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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11. 2018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운동을 결심해 본 적이 없는데.

평생을 살면서 딱 한 번 내 체중을 걱정해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다이어터들이 하는 고민과는 사뭇 다른, 갑자기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 때문에 했던 걱정이었다. 한 달을 굶어도 단 1kg도 줄어들지 않던 내 몸무게는 불과 두 주 만에 4kg이 빠졌고, 이어진 두 주 후에는 1kg이 더 빠져 꿈의 몸무게(?)인 47kg을 기록했다.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통한 다이어트가 아니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절식 탓이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건강을 굉장히 많이 해치는 습관이기 때문에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아무튼 그 한 달 사이에 5kg을 '감량'한 것은 이 버릇 때문이었던 것이다. 최고의 다이어트는 실연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고 다니긴 했지만, 당시의 내 건강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현기증이 빈번히 일었고 손발이 이전보다 더 자주 저렸으며,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온몸에 기력이 없었고, 당연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홀린 듯이 집 앞 요가 학원을 등록하고, 쌀죽부터 시작해서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소위 '미용 몸무게'라는 것은 너무 가혹했고, 하나도 건강하지 않았다. 내 키에 딱 맞는 미용 몸무게를 가졌을 때 알았다. 나는 아름답지도 않았고 그냥 굶어서 죽어가는 불쌍한 여자에 불과했다.


한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자기 몸을 긍정하는 싸움'을 그만둬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말라 보이고, 더 예뻐 보일까? 어떻게 하면 55 사이즈, 아니 44 사이즈의 옷을 딱 알맞게 입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몸매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답을 구해야 할 질문은 저런 것들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지금의 내 몸이 좋고 이대로도 아름답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될까?"다. 매우 어렵지만.

자신이 가진 몸을 긍정하라며 조언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원한다. 이 기준이 지금이야 여성에게만 가혹하게 다가오지만, 곧 남성의 숨도 조여올 것이라는 걸 아직 모르는 걸까. 냉혹한 미의 기준은 결국 성별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잔인하게 닥칠 것이다.


요가를 다니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체력이 금방 예전같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몸무게는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식사량을 단번에 예전만큼 끌어올리지는 못해서 서서히 양을 늘려갔고, 하나 둘 건강한 습관을 몸에 새겨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나서 내 몸무게는 건강함 그 이상을 가리키게 되었다. 내 생에 가져본 적 없는 가장 무거운 몸무게가 저울에 나타났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걱정이 되지 않았다. 47kg이 나갔던 그때보다는 훨씬 더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2018년에 접어들면서 새해 목표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복근 만들기'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고, 남들 다 찍는 복근 사진 한 번 찍어 보고 싶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지치지 않을 체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어쨌든 어렵고 힘들 때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이 체력이니까.

벌써 올해가 시작한 지 4개월이나 되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느라 사실은 제대로 된 운동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에 집 근처에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헉 소리가 나는 비용을 할부로 계산을 하며 생각했다. 정말 올여름에는 멋진 복근으로 세미누드를 찍고야 말겠어.

그리고 사실 땀흘려 운동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진다.

헬스클럽을 등록하면 으레 인바디를 측정해준다. 나는 47kg일 적에 측정했던 내 인바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방도 없지만 근육도 없었던, 매우 걱정스러운 지표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52kg일 때 측정했던 인바디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다소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존재감을 알렸던 근육과 자랑하기 부끄러운 내장지방들의 향연. 이번에 측정한 인바디는 그 중간의 어디쯤이었다. 아직 근육이 부족한 편이긴 하지만,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고, 지방 역시 걱정할 수준으로 많거나 적지 않았다.

내 운동의 목적은 체력향상과 근력증강에 있었다. 물론 복근을 만들려면 뱃살을 조금 감량해 줄 필요는 있었겠지만, 그것 역시도 나의 최종 목적을 위한 몇 가지 스텝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인바디를 측정해주고 상담해주던 헬스 트레이너의 말 중 나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이 있었다. 상담 초반에 나는 분명 "체력을 키우고 근육을 만들고 싶어"서 운동을 한다고 말했는데,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그래도 어느 정도 체중이 감량되면 좋지 않아요?" 하고 설득하듯 말을 했다. 나는 내 체중에 불만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내 체중에 불만을 가지지 않으면 이상한 건가? 그래서 체중 감량이 목적이 아닌 게 그렇게도 이상한 일인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불쾌감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카카오톡 채널을 서칭 하다가 우연히 이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거, 나에게도 일어난 일이야!

https://v.kakao.com/v/20180405105101292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의지로 시작하지 않았던 태권도를 제외하고,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운동들은 그러했다.

어릴 적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검도를 성인이 되어 시작했는데, 단 6개월 만에 비약적으로 체력을 끌어올렸다. 검도장의 '선배들'이 "검도를 하면 몸매가 예뻐지지 않는다."며 겁을 주었지만, 나는 몸매 때문에 검도를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검도라는 운동이 '멋있어 보여서' 하고 싶었던 어린 마음을 성인이 되어 충족시켜 주려 했던 것뿐이었다. 어렸던 욕심을 충족시켜 주면서 덤으로 딸려온 '체력 향상'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운동 전이나 후나 내 몸매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친구랑 함께 살면서 등록한 헬스클럽은 술을 더 건강히 잘 먹기 위한 체력을 기르려고 시작한 운동이었고, 체중이 갑작스럽게 빠졌을 때 시작한 요가 역시 전적으로 내 체력을 위한 운동이었다. 다시 헬스클럽에 등록하면서 나의 목표는 체력 단련과 근육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지, 체중 감량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헬스 트레이너는 나에게 체중 감량이 운동의 이유가 아닐 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 예, 뭐, 조금 감량하면 좋긴 하겠죠." 글쎄 나는 뭐라고 대답했어야 좋았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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