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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오 Oct 30. 2020

8. 시간과 얼굴

여기 사람 있어요

다리를 쭉 핀다. 딱딱하고 짧은 침대에 불편함을 느낀다. 커튼 너머 작게 코를 고는 소리,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삐걱이는 침대 소리, 문 밖으로 차분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시계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지금 병원에 있다. 


엄마는 작년과 올해 큰 수술을 받고난 뒤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집안 모든 가구를 한나절만에 새롭게 배치할 수 있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몇 시간만 밖에 있어도 힘에 부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두 번 꼭 산책을 했다. 낮에는 강아지와 한 번, 저녁에는 뒷산으로 한 번. 꽃향기가 좋다며 볼이 발개지도록 걷던 엄마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엄마가 겹쳐 보였다.


밤 열 두시. 조용히 불을 켜고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내일 있을 수술을 위해서 미리 링겔을 꽂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잠을 자던 엄마는 강아지 코코가 배 위에서 자고 있는 꿈을 꿨다며 중얼거렸다. 고무줄로 팔을 묶고, 주먹을 쥐었다 피고, 몇 번의 두드림이 있었다. 엄마는 원래 핏줄을 찾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두꺼운 주사 바늘이 손목을 여러 방향으로 파고 들었지만 결국엔 퍼렇게 터져버렸고, 간호사 선생님은 조금 뒤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주사만 찔렸네 하며 괜히 발을 주물러줬다. 엄마는 이제 고수가 찾아 올거라며 웃었다.


조금 뒤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찾아왔다. 이어 부은 엄마의 손목을 보고 작게 인상을 썼다. 고무줄에도 엄마가 아파하자 긴장이 됐다. 엄마는 간호사 선생님이 핏줄 찾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바늘을 꺼냈을 때는 눈을 감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바늘을 꺼내고도 신중하게 핏줄을 찾다가 마침내 따끔할 거라는 말과 함께 주사를 놨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내가 숨을 크게 내쉬니 엄마가 웃었다. "이것봐." 하며 내민 손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간호사 선생님도 "아휴. 저도." 하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엄마의 얼굴과 능숙해보이던 간호사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했던터라 괜히 얼떨떨했다. 나는 나만 긴장한 줄 알았지. 간호사 선생님이 떠나고 처음부터 저 분이 오시면 좋았을텐데 하는 말에 엄마는 그 사람도 배워야지 했다.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저녁을 먹던 중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수술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큰 수술도 아닐 뿐더러 괜히 걱정하는 게 싫다고. 그러다가도 가족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병원 속에 혼자 있을 나를 떠올렸다. 엄마처럼 가족에겐 속상할까봐 알리지 않을 날들, 그리고 사실 이미 알리지 않았던 지난 날들을.


여전히 병실 속 시계는 째깍거린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부쩍 잠이 많아진 강아지 코코도 나이를 먹는다. 운명이니 카르마니 이유없는 아픔을 원망할 때도, 아름다운 밤하늘과 지고 피는 꽃을 볼 때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유한하니까 잘 보내야지.


전북대학교 병실에서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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