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보다는 나만의 방향을 남기기 위해서
글쓰기 수업 5회차의 과제는,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하는 글쓰기'였다.
한 개의 문장을 보고, 그것에서 자유롭게 생각이 퐁퐁 솟아나고, 또 꼬리를 물며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문장을 마주하더라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장면과 감정은 다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나는 <위대한 사상가 케빈 켈리의 현실적인 인생 조언>이라는 책을 읽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한 번쯤 멈춰 서서 생각해볼 만한 문장들을 쏙쏙 골라내었다.
그 문장들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 글의 주제로 삼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한 일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는 많이 없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는 문장을 선택했다.
별도로 제목을 짓지 않아서, 내가 이 글에 제목을 조용히 달아보았다.
<오늘도 죽음을 생각하며>.
글은 의외로 신선하게도, 이러한 노벨상 이야기로 시작된다.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은 조간 신문에서 자신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형 루드비히 노벨이 사망했는데, 한 언론인의 착각으로 대문짝만하게 노벨의 부고 기사가 난 것이다.
하지만 노벨을 정말로 당황하게 만든 것은 부고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하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다이너마이트의 왕이 죽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발견해 떼돈을 번 노벨이 어제 죽었다."
자신이 5개 국어를 하고 기발한 화학자이자 뛰어난 발명가라거나 자신의 기업가적 열정에 대한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8년 후 노벨이 사망했을 때, 그의 유언장에는 뜻밖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재산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대신, '전년도에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바로 노벨상을 제정하는 데 재산을 사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후회되는 일이 있을 때,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과거의 내가 한 행동들이 후회스럽고 바로 잡기가 어려울 때 그런 말로 자책하며, 그대로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후회 없이, 실수 없이 살 수 있을까?
노벨은 오보로 난 기사를 보고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어떻게 평가될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재정비했다.
과거의 나의 선택이, 나의 행동이 후회되어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 지금부터 마치 그런 것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
이어서 엄마는 무언가를 주저하게 되거나 결정이 어려울 때, 그 선택을 쉽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자신이 앞으로 한 달 혹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럼 지금 붙들고 있는 고민들이 한없이 작고 가벼워질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살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귀찮고 피하고 싶었던 일들조차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오늘도 죽음을 생각하면, 함께 하는 가족이 더욱 고맙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하다고.
정말 엄마다운 글이었다. 죽음을 주제로 삼았지만, 결코 무겁게 가라앉기보다는 살아 있는 오늘에 대해 오히려 더 또렷이 바라보게 하는 글이었다. 노벨상 이야기로 서문을 연 것 또한 새로워서 인상 깊었다.
다만, 이전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엄마의 글은 엄마만의 것이어야 하기에 짧게라도 엄마의 경험이 담긴 한 장면이 들어간다면, 문장들이 훨씬 더 깊어질 것 같다.
예를 들어, 하지 않아서 오래 마음에 남은 일이라든가 실패했지만 '그래도 해보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 망설이다가 결국 선택한 일이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 같은 것들.
글의 중심이 하나의 '조언'보다는 엄마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아빠는 '계획된 일정이 없는 목표라면 꿈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골랐다.
아빠도 문장 그대로를 제목으로 삼아서, 나는 이런 제목을 붙여 보았다.
<연습 중인 마음>.
어릴 적 책상 앞에 장래희망, 꿈을 붙여놓곤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밖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이 품고 산다.
내 꿈에 대해 타인이나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일은 극히 드문 것 같다.
...
일상 속에서 예전의 꿈과는 별도로 새로운 꿈을 키울 수도 있다.
꿈은 항상 새롭게 꿀 수 있다.
계획된 일정대로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자기 삶을 걸어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처음부터 무계획적으로, 무작정 되는 대로만 살아가는 삶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각기 다르겠지만, 수정과 보완을 통해 목표에 가깝게 도달하는 삶도
일정대로 가다가 계획을 변경하여 다르 꿈을 좇아가는 삶도
운 좋게 로또에 당첨되듯이 계획에 없던 삶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자학하며 지금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하루하루를 꿈과는 별개로 성실히 살아가는 이도 있다.
아빠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항상 같은 속도로 달리기는 무척 힘들고, 훈련된 선수가 아닌 이상 중간에 걷다가 쉬다가 달리다가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목표인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절로 힘이 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사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습 없이 의욕만으로 도전하다간 기력 소진, 상처로 얼룩진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연습하고, 누군가의 박수와 응원으로 힘을 얻고, 나 자신에게도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 연신 뒤돌아보기보다는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사실 아빠는 조금 더 확정적인 어조를 사용했다.
연습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뛰어가야 한다고.
아빠의 성향과 가치관을 아는 나는, 아빠가 왜 이런 논조의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는 후회와 망설임에 머무는 시간을 '의미 있는 정지'보다는 '아까운 시간'으로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아빠의 실제 속마음은 어떨지 잘 모르지만, 겉으로 보는 아빠는 그렇다!)
반면 나는, 노력하고 연습하는 데에 반해 끊임없이 후회하고 마음을 되짚게 된다. 자꾸 뒤를 돌아보느라 더디게 걷는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나를 깎아 먹으며 과거만 돌아보는 것은 분명 독이고, 앞으로 한 발짝씩 내딛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내가 지나온 그 길에도 놓쳐선 안될 배움과 통찰이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방향을 설정할 수도 있다.
그 시간이 비효율적일지라도, 내게는 그것 역시 하나의 나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항상 '사전 연습'을 할 수 있는 삶이라면 조금은 더 쉬웠을까?
조금은 덜 불안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기회는 항상 찾아오지도 않으며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우리는 꿈을 꿀 때조차도 방향과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비록 모든 걸 준비할 순 없어도, 마음의 나침반 하나쯤은 손에 쥐고 살아야 한다.
<김가네 시트콤: 글쓰기 수업 편> 시리즈 5화입니다.
우리 가족의 글쓰기 여행은 계속됩니다. 이어질 6화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