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맺지 않아 더 진심인 가족

booker 시리즈 제 8화

by 롬콤


'OOO이라는 신대륙을 만나고 새 세계가 열렸다.'

'황선우'는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된다고 말한다.

다른 온도와 습도를 가진 기후대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단순히 사람을 한 명 더 아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후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표현에 감탄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 안의 낯선 문을 열고, 이전에 몰랐던 것들을 불러오는 순간을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대화를 나누지만, 그 안에 흐르는 정서의 온도, 말투의 습도, 침묵의 밀도는 전혀 다른 세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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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처럼 어릴 때부터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이처럼 강력한(?) 변화를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 결혼해서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내게 될 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까? 나는 그 미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대가 된다.


혼자일 때는 몰랐던 것들을,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배우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둘 다 나름 자기 삶의 기준이 있고, 취향이 뚜렷하고, 집에서만큼은 편하고 싶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은 타인의 방식에 각자를 억지로 맞추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후대가 조심스럽게 겹쳐져가는 감정의 기상 변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엄마아빠와 함께 살고 있고,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20대 초반에는 자유롭게 술을 마시며 놀고 잔소리를 피하고 싶어서, 잠시 자취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몇 년 보내고 나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이 나에게 적지 않은 경제적 자유를 주기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누군가 있다는 건 알게 모르게 커다란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성향상 불안감이 강하다.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모두 잠들고 나 혼자 방에 누워 있으면 별안간 불안할 때가 종종 있다.

한번 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고, 어떨 때는 눈물짓게 하기도 한다.

불안은 나에게 그냥 배경처럼 깔려 있는 느낌이 든다. 몸도 마음도 계속 에너지를 쓰는 상태로 머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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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혼자 살지 않지만 '김하나'가 말하는 혼자 덩그러니 집에 있을 때의 불안과 피로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주는 정서적인 평화는 혼자 살아보거나, 혹은 외로움이나 불안감이 강한 사람은 분명하게 느낄 것이다.

그것은 홀로 있을 때의 정적이 싫어서 의미 없이 틀어놓는 TV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크고 의미 있다.


타인은 강력한 주의 환기의 요인이 된다.

특별한 말이나 같이 하는 행동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줄어들고 편안해진다. 쓸데없는 생각이 줄어들고 마음이 놓인다.

꼭 집 안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혼자일 때보다 마음이 훨씬 느슨해지는 것이다.




작가 ‘김하나’와 ‘황선우’는 일상의 공간을 배분하고, 기호를 조율하며, 각자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단순한 ‘동거 생활 팁’같은 게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작은 철학(그리고 결혼이 아닌 생활 동반자로서의 동거에 대한 의미)처럼 느껴졌다.


둘 사이에는 묵시적으로 존중되는 생활 기준이 있고, 거기에 맞추고자 노력하는 배려가 있다. 이런 말 없이 오가는 눈치와 책임감의 조화가 동거에는 필수적이다.

두 사람이 한집에 살지만 각자의 삶을 지켜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퇴근 후 각자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등 독립된 삶을 사는 동시에, 같이 있을 때(혹은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을 때) 더 단단해지는 의지력과 유대감이 좋아 보였다.


누군가와 같이 있기 때문에 혼자 있었다면 늘어져 허비했을 시간을 채워보기도 하고, 동거인을 챙기기 위해 대충 때웠을 한 끼를 요리하기도 한다.

혼자였다면 오늘 짜증났던 일을 가만히 복기하면서 상심했을 시간도, 서로 하나씩 털어놓으며 맥주 한 캔을 마시면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느슨한 균형이 참 보기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소울메이트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생활 습관과 성격이 전혀 다른 타인이기에 싸움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이 '싸움의 기술'에 대해 풀어낸 장이 인상적이었다.


'잘 산다는 건 곧 잘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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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가족은 전통적인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 아니라, 서로가 원할 때 유연하게 엮이고 흩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분자 가족'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누군가의 며느리나 사위가 되어 얽히는 게 아니라, 그냥 좋은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맛있는 걸 얻어먹고 고맙다고 말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 안엔 역할로서의 부담이나 의무 대신, 생활을 함께하는 마음의 온기가 존재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의 가족이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드는 이 관계는 어쩌면 더 건강하고, 더 자율적인 또 다른 가족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이 관계의 미덕은 격식이 없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억지로 맺지 않았기 때문에 더 진심일 수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부모님도 어떠한 서열 관계가 아니라 ‘같이 밥을 나누고 정을 느끼는 어른’으로서 다가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며느리나 사위 같은 오랜 사회적 의무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그저 '내 아들딸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가족이라는 말 없이도 가족 같은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더 평화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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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삶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 평등한 유대는 요즘 사회에서 흔하지 않다.

여자와 남자가 결혼해서 집안을 잇고, 어느 쪽의 며느리나 사위가 되며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사람'이 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나에게 소중한 사람, 그리고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과 작은 생활을 나누는 관계는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보기가 어렵다.

또한 동성 둘이 살기 때문에 법적으로 인정 혹은 보호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나면, 다양한 분자 구조의 가족들이 인정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거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지만) 잘 맞는 동성 친구와 같이 살면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퐁퐁 솟아났다.

원한다면 가볍게 읽기도 좋은 책이지만,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서로를 지키면서 같이 사는 법'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 속에서 재정의하는 가족과 자기자신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어 마냥 가볍게 다가오지만도 않다.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우리, 꽤 잘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저 “이런 여자 둘이 살고 있어요”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이건 가능하고, 저건 어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같이 사는 이유는 이런 거예요’를 정말 솔직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건 결국 '이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도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미래가 기대되는가'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질문 앞에서 멋지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다.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에세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 보고 나면 괜히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고, 다시 한번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말에 설득당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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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주는 감정이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생활적인데도 뭉클한 면이 있다.

혼자의 삶이 익숙해진 이들에게, '둘이 산다는 것'의 복잡하고 아름다운 결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예전에 같이 살았던 사람에게도, 혹은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될 나 자신에게도, 조용히 건네고 싶은 책이다.



KakaoTalk_20250605_140120350_03.jpg 처음엔 언니에게 빌려서 읽었지만, 하나 소장하고 싶어서 구매했다.


그리고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읽힐 거라고 장담한다!

벌써 2번이나 읽었단 말이다.




+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의 에세이를 언니랑 둘이 꼭 써보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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