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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연을 끊다.

by 김사장

학부모 공개 수업 때 시부모님들과 참석해

알뜰히 챙기는 모습이 너무 이뻐

사소한 부탁을 해도 흔쾌히 들어주었고

독실한 천주교인이었기에 그녀에 마음속엔 순결함만 가득 차 있을 거란 생각에

15년 가까이 멀리 있는 가족들보다

더 가까이 지냈다.

하지만 그녀의 시부모님들이 돌아가신 후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진 그녀는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아니 솔직한 심정은 '그동안 어떻게 본색을 숨기며 살았을까?'

어쩜 난 이미 그녀에 대한 시선이 비난으로 가득

차 있는 거 같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들을 자랑하듯

얘기하는 그녀에게 "미쳤어?"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자신에 행동을 책임지고 살 수 있는 나이기도 하고

타인에 사생활을 관여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에 얘기를 그냥 듣고 흘리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만을 참을 수가 없어

"제정신이야?? 그럴 거면 차라리 떳떳하게 이혼하고 만나!! 나중에 남편이나 애들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걸 어떡해 장담해? 그리고 들킬 일이 없으니 괜찮다는 얘기로 들리네?"

"근데 언니 왜 이렇게 화를 내?"

"글쎄 내가 왜 화를 내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나 좀 바쁘니깐 나중에 얘기해."

"그래~알았어."

그녀는 나에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사납게 쏘아붙인 내 말투만 불쾌한 듯

서둘러 갔다.


한 시간 내내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자기랑 나랑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 그땐 여러 가지가 참 많이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랑 나랑 많은 부분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아무래도 우리에 인연은 여기에서 끝내는 게

맞는 거 같아, 잘 지내."

뭐가 그리 바쁜지 2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그녀로부터 답톡이 왔다.

"갑자기? 언니랑 나랑 어떤 게 안 맞는다는 건지 정확히 알려줘야 납득을 하지?"

"여러 가지가~"

그렇게 몇 번에 카톡을 주고받았지만

결론은 서로

"잘 지내"로 마무리 지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아마 그녀와 같은 상황에 쓰라고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왜 빨리 이런 결정을 하지 못했을까?

이제 서아 뇌가 텅 빈 것처럼 맑아진 느낌이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전공한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회사는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시켰다.

부장님께 "저랑 회사랑 안 맞는 거 같아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좀 더 참고 다니다 보면

괜찮을 거야."

그렇게 여러 번에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그때마다 부모님과 부장님이 날 설득시켰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가 판단해서 사는 게 맞다는 결론을 짓고 6개월이 되는 마지막 날에 부장님 책상 위에 퇴직서를 놓고 나왔다.

직장이란 게 나하고는 안 맞는다는 생각에

과감히 내 일을 시작했었고 큰 실패란 걸 겪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은 세상이 돌아가는 판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현재 생활에 안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날 또 다른 일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세상에 도태되지 않으려는 준비'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그래서 난 오늘로 이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

아마 내가 다시 연재를 시작하는 날이면

내 도전이 어느 정도 완성을 이룬 날이 될 것이다.

그동안 많이 미숙한 글 읽어주신

구독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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