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이야기 4

사람의 마음을 나누는 여수의 맛과 멋

by 목마르다언덕

입 안의 따뜻함은 결국 마음으로 간다


바다의 맛, 사람의 정, 그리고 그리움 한 숟갈

바다가 품은 도시, 여수.
누군가는 푸른 바다를 보기 위해,
누군가는 낭만의 밤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여수는 단 하나.
‘밥상이 먼저였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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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도시에서
풍경보다 먼저 밥냄새를 기억한다.
바람보다 먼저 국물의 온기를 떠올린다.
그건 단순한 미각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성으로 내어준 한 끼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낯선 여행자에게 따뜻한 밥을 건네는 마음,
입 안에서 퍼지는 맛을 따라
서서히 마음이 풀어지는 경험.

그리고 정말, 정말 맛있는 음식들.

지금부터,
그 따뜻한 식탁 위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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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식당 – 바다의 기운을 밥상에 담아


비가 내리던 날,
여수 여객선터미널을 마주한 사거리에
작은 식당 하나가 나를 불렀다.

혼자였다.
말없이 문을 열자,
“어서 오세요, 편하게 앉으세요.”
사장님의 인사는 따뜻했고,
나를 ‘손님’이 아니라
‘오랜만에 온 사람’처럼 맞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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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건 갈치조림 1인분.

혼자 먹기 민망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눈치도 없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와 정갈한 반찬이 조심스레 내 앞에 놓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갈치는 살이 부드럽고,
양념은 깊었다.
잘 익은 무 한 조각에 양념을 적셔 입에 넣자,
입 안에 여수의 바다가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비웠다.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혼자인 나를 위해 이토록 따뜻한 한 끼를 내어준
그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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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친구와 함께 다시 그 식당을 찾았다.

“오늘은 둘이 오셨네요, 어제보다 더 좋은 날이네요.”
사장님의 인사에, 나는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나온 건 아귀탕.

뚝배기 속에서 콩나물과 미나리, 토실한 아귀 살이
부지런히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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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친구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집은… 음식을 내주는 게 아니야.
그냥…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맛이야.”

친구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는
여수의 바다보다 더 따뜻한 국물 안에서
잠시, 세상의 피로를 내려놓았다.


여객선식당 – 전라남도 여수시 이순신광장로 19

시그니처 : 갈치조림, 아귀탕, 생선구이

분위기: 여수항 가까이, 매일 아침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식당




원앙식당 – 정갈하게 담긴 마음, 게장정식


여수항 골목 안, ‘밥을 잘 차려주는 집’이 있다.
간판은 크지 않았지만, 식당 앞에 놓인 화분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따뜻한 조명이 이끌리듯 나를 불러 세웠다.

문을 열자, 푸근한 이모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혼자 오셨어요? 얼른 앉아요, 오늘 게장 좋아요.”

잠시 후, 게장정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잘 익은 나물 반찬, 구수한 된장찌개.
그야말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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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양념을 밥에 넣어 비벼 한 입 넣자
고소하고 짭조름한 감칠맛이 입 안 가득 번졌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냥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위로였다.

“맛있죠?”
이모님의 짧은 물음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너무 맛있어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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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 테이블의 손님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 집이요, 여수에서도 가장 맛있는 게장집 중 하나예요.
저도 여기만 오면 꼭 한 번은 들러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했다. 아주 깊이.

너무 맛있어서,
밥 한 공기를 다 먹고도
게장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공기밥 하나를 더 시켰다.
그리고 그 두 번째 공기마저,
남김없이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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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게장으로 두 공기를 먹고도 마음속엔

더 많은 따뜻함이 채워진 채
식당을 나섰다.

이 집은, 게장 맛집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잘 차려주는 집이었다.
그게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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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식당 – 전라남도 여수시 교동 556
시그니처: 게장정식, 간장게장·양념게장
분위기: 정갈한 한 상 위에 담긴 정성, ‘밥을 잘 차려주는 집’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곳



쫑포 금바우 – 바다와 육지의 화합, 삼합


낭만포차 거리 근처 바닷가,
쫑포 끝자락에 있는 금바우 식당.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바람에 엷게 실려오는 해산물 냄새가 이미 마음을 흔든다.

커다란 냄비 안에
통문어 한 마리와 조개, 홍합, 새우, 키조개, 전복…
해산물이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아래엔 고기와 묵은지, 콩나물까지 한데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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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문어가 가위에 잘려 툭툭 떨어지고,
국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진한 바다의 냄새가 고소한 육수에 얹히며
입보다 먼저, 마음이 먹는다.


국물 한 숟갈.
속이 확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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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하나, 새우 한 입,
그리고 묵은지를 곁들인 보쌈 한 점.

그야말로 완벽한 삼합.

묵은지의 시원한 산미,
보쌈의 기름진 고소함,
해산물의 쫄깃하고 짭짤한 바다 향.
그 조화는 말이 필요 없었다.


“이건 그냥… 소주 한 잔 각이다.”
속으로 말하면서
진심으로, 소주가 땡겼다.

이건 안주가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이자
여수 바다와 삶을 나누는 숟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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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포금바우식당 – 전라남도 여수시 이순신광장로 137

시그니처: 문어·보쌈·묵은지 삼합

분위기: 파도소리와 함께하는 여수 로컬의 감칠맛, 소주 한 잔이 절로 생각나는 시간



호남갈비 – 오래된 인연 위에 얹은 숯불 한 점의 위로


여수의 저녁 공기가 유난히도 부드럽게 스며들던 날,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친구와 선배님,
삶의 후배이자 따뜻한 선생님 같은 동생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자리 위로 차곡차곡 쌓이는 반찬들,
갓 데친 파절이와 쌈채소,
탱글한 새우, 노릇하게 볶아낸 묵은지,
그리고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돼지갈비.


그날의 고기는 유난히도 맛있었다.

불향은 은은하게 코끝을 간질이고,

양념은 깊고 진하게 마음까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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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딱 좋아요, 한 점 드셔보세요.”

사장님의 말에 따라 올려본 갈비 한 점.
그건 그냥 고기가 아니었다.
묵묵히 걸어온 시간,
때론 말없이 곁을 지켜준 우정,
조용히 건넨 응원 같은 것이
한 점의 고기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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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웃었고,
소주잔을 부딪치며 "반갑다",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다.
한 점 한 점을 입에 넣으며,
함께 보낸 시간만큼 말이 줄고, 마음이 더 찼다.

연기에 눈이 시려도,
웃는 얼굴이 더 눈부셨던 밤.
고기 위에 얹은 건,
정성도, 정다운 말도, 그리고 오래된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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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여수의 ‘호남갈비’는,
우리에게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그건, 잠시 쉬어가는 마음의 마루였다.
다시 힘내기 위한 작은 불씨였다.


호남갈비 –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 동문로 93-1
시그니처: 돼지갈비(숯불), 생삼겹, 특양념갈비
분위기: 정 많은 사람들과, 조용히 나누는 따뜻한 밤의 술 한잔




낭만포차 거리 – 밤바다를 안주 삼아, 여수를 맛보다


밤이 되면 여수는 새로운 얼굴을 꺼내든다.
돌산대교 아래, 조명이 반짝이는 낭만포차 거리.

철판 위에서 구워내는 새우버터구이는
향기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녹인다.
양념을 살짝 얹은 생선구이의 고소함은
소주 한잔을 유혹하는 맛이다.
그리고 안주를 맛본 순간,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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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단순한 안주가 아니다.
말 대신 온기를 나누는 여수의 밤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아무 말 없이 내어주신 서비스 홍합탕.
진한 국물 한 숟갈에 속이 풀리고,
곧이어 등장한 낙지탕탕이와 낙지호롱이는
쫄깃하고 매콤한 맛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포장마차 거리는 바다와 맞닿아 있어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이야기를 나누기 딱 좋다.

지나가는 바람도,
식지 않은 철판도,
그리고 곁에 앉은 사람도
모두 낭만의 일부가 되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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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포차거리 - 전라남도 여수시 하멜로 102 낭만포차거리 내

시그니처 : 새우버터구이, 막창·새우·마늘 삼합, 낙지탕탕이, 낙지호롱이

분위기 : 바다와 맞닿은 포장마차, 감성을 살리는 분위기, 여수 밤바다의 진짜 낭만을 마주하는 곳




남산식당 – 장어탕, 기운을 담은 국물 한 그릇


여수항 근처를 걷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간판 하나.
‘남산식당’.
이름부터 어딘가 정겹고, 오래된 추억을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겉보기엔 참 평범했다.
깔끔한 벽면, 소박한 나무 테이블, 말없이 김치 담아주는 사장님
그런데 그 안에서 만난 장어탕은
그 어떤 화려한 식당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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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 식탁 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

여수의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었다.
그건,
사람이 사람에게 내어주는 마음이었다.

조금은 투박한 밥상 위에
사장님의 손길과 미소,
그리고 말없이 내어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마음으로도 든든했다.

여수는,
눈으로 보기 전에 입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그리고 입으로 기억한 그 맛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었다.


“바다를 보러 갔지만,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받아왔다.”
여수는 그런 도시였다.


남산식당 –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 727
시그니처: 장어탕, 장어양념구이, 장어소금구이, 장어간장구이
분위기: 조용하고 담백한 한 끼, 허기보다 마음을 먼저 채워주는 식당



여수, 입 안에 오래 머무는 도시


여수는 나에게 풍경이 아니라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드는 도시였다.

손으로 직접 담은 양념,
묵묵히 내어주는 밥상,
바다를 삶아 낸 국물,
그리고 낯선 여행자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그 모든 것들이
입 안에 오래 머물렀고,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나는, 이 음식들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단지 ‘맛있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고,
마음이 허할 때 다시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처럼,
여수의 밥상은 내 인생의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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