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산난 Aug 27. 2024

Ep4. 도미닉

쿵스레덴 야생일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끼익, 의자 끌리는 소리. 누군가 말을 건다. 고개를 돌려보니 외국인. 나에게 묻는다. “안녕, 너 혹시 하이커야?” 뭐야, 어떻게 알았지?






내가 하이커처럼 보이나?

더 생각할 겨를 없이 대답했다.


응, 맞아. 너도? / 응. 지금은 어디 가는 중이야? / 아, 나 6개월 동안 세계여행 중인데 지금은 아비스코로 가려고. 쿵스레덴이라고 알아? / 쿵스레덴에 가? / 응, 혹시 너도? / 맞아, 신기하다. 너 어디까지 걸을 계획이야? / 하하. 계획은 헤마반까지인데, 몸이 따라줄지는 모르겠어. 갈 때까지 가보려고. / 잘됐다. 나도 아비스코에서 헤마반까지 걸을 계획인데. 같이 걸을래?


순식간에 동행이 생겼다. 나에게 말을 건 녀석은 도미닉, 22세 체코 청년이었다. (오, 나이 맞추기 게임을 했다면 내가 필히 졌을 것이다.) 같은 행선지에 기쁜 듯한 그는 신이 난 표정으로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기차는 몇 시 티켓이야? 나는 아비스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출발할 건데 너는? 하루에 몇 킬로 운행하려고? 아! 나는 텐트 챙겼는데, 혹시 너도?


놀랍게도 그의 계획과 나의 계획은 일치했다. 이제 곧 출발하는 기차를 타는 것도, 아비스코 숙소에서 장을 보고 하루 쉬어가는 것도, 하루 20킬로의 3주의 일정을 잡은 것도, 걷다가 보이는 들판에 텐트를 피고 자려는 것도 말이다. 차이라면 그는 침대칸, 나는 좌석칸을 예약했다는 점, 숙소에서 그는 싱글룸, 나는 도미토리라는 정도이다. (여기서부터 드러나는 경제력의 차이에 왈칵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탑승시간이다. 우리는 배낭을 챙겨 승차홈으로 내려갔고, 기차는 정시에 도착했다.


여기가 몇 번 칸이지? 그제야 확인해 본 티켓. 나는 16번 칸, 그는 14번 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서있는 곳은 15번 칸의 복도. 아, 나는 왼쪽이네. 그럼 도미닉. 내일 아비스코에서 만나.. 자고 하려 했는데 그가 나를 14번 칸으로 데리고 가는 게 아닌가? 무슨 상황이지?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던 나는 그와 함께 내 배낭보다 좁은 복도를 걸었다. 복도는 일방통행이었다. 우리를 발견한 모든 사람은 일제히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야말로 헤집고 다니는 셈이다. 아, 다시 16번 칸으로 돌아갈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와중에 도미닉은 본인의 좌석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저기, 나라도 내 자리에 짐을 두고 오는 게 어떨까. 배낭 메고 움직이는 건 버겁잖아? 이 말을 하기가 힘들어서 나는 서 있던 자리에 배낭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찾아보고 올게. / 짐을 여기다 두고? / (야 내 가방 무거워서 아무도 못 들고 가. 귀하게 챙길 것도 없고.) 상관없어.

*참고로 ( )는 묵음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랬다. 이 기차는 분명히 유료좌석제였지만 그의 자리에는 뻔뻔하게 누군가 앉아있었고, 대화를 시도했으나 자리 찾기에 실패했다. 도미닉은 화가 났는지 텅 빈 6인실로 들어가서 문을 쾅 닫고 커튼을 쳤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 그 방 안에 함께였다.

알면 더 재밌고 유용한 추가정보

+ 기차를 탄 지 30분이 지나서야 착석했다.

+ 글을 마치는 시점에 배낭은 복도에 방치된 상태였다.

+ 작자는 도미닉보다 조금 더 살았다.


insta @kim.sannan

이전 04화 Ep3. 알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