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스레덴 야생일기
나는 몸을 일으켜 큰 자갈을 수집해 왔다. 녀석도 지지 않으려는 듯 옆에서 평평한 돌을 골라낸다.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며 무너지는 자갈을 몇 번이고 다시 쌓았다. 자갈 쌓느라 삼십 분이 지났다.
한 시가 넘어버린 시간. 가지고 있던 자갈을 마구잡이로 쌓은 뒤 손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개울에서 묵은 물을 비우고 새 물을 담는다. 그 사악한 물가의 스웨덴에서도 물만큼은 무제한이니까.
엎어진 배낭을 바위에 앉히고 어깨에 걸쳤다. 메자마자 탈골될 것처럼 뻐근해지는 어깨. 몸과 배낭 사이 뜨는 부분이 없도록 허리와 어깨끈을 꽉 조아맨다. 같은 배낭도 세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체감무게가 다르다던데. 무심하게 중고나라에서 구매해 버린 툴레 배낭은 아직 내 몸에 맞는 세팅을 찾지 못했다. 매장에서 세팅해 보고 사라는 말 들을 걸. 평지를 잠깐 걸을 때는 불편함을 몰랐는데, 몇 시간 이상 운행하니 뼛속 깊이 이해한다. 나는 꼭 이러더라.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며 체득하는 스타일. 이제 와서 어쩌겠어, 걸으면서 직접 맞춰야지.
멍든 듯 욱신거리는 통증에 당장은 두 손을 어깨와 배낭끈 사이에 끼운 뒤, 손의 힘으로 배낭의 무게를 버티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달랑거리는 왼쪽 어깨의 카메라. 남들은 경량화한다고 걷어내기 바쁜데 아무것도 못 버리고 전부 챙겨 온 나도 참. 독한 건지 독특한 건지. 두고 오지 못한 낭만들이 주렁주렁 나와 함께 걷는다. 그나저나 꽤 온 것 같은데.
우리 얼마나 온 거지? / 아마 반 정도 왔을 거야. 팔 킬로? 그나저나 오늘 텐트는 어디에 치고 싶어? / 음 나는 어디든 상관없긴 한데.
무료 사이트를 찾고 싶긴 하다. 숙박비 아끼고 싶어서 텐트 챙겨 온 거거든 나.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아비스코 국립공원에선 노지숙박 안되는 거 알지? 그게 어디까지지? 보더가 십육 킬로야. 그 이후부터는 가능해. 씻고 조리하려면 물도 있어야 하잖아. 그 주변에서 개울을 찾아야겠네. 이따 쉬면서 지도를 좀 봐야겠어.
아무튼 국립공원 보더만 지나면 다 무료라는 거지? 앞으로 팔 킬로. 관악산 두 번 왕복. 달마고도 반토막. 별 거 아니다.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긴. 일 킬로가 이리도 멀었던가. 나는 또 다른 개울이 나타나자마자 다시 한번 배낭을 던져야 했다. 땀을 흘려서 그런가. 당이 너무 당긴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젤리팩을 꺼내 가장 새콤해 보이는 도넛형 사워젤리를 한 입 물었다. 뇌 어딘가에 찌르르 피가 돌며 흐리던 눈에 초점이 잡힌다.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눕고 싶다. 그럼 눕지 뭐. 개울에 솟아있는 돌다리를 총총 건너 기울어진 바위에 몸을 뉘었다. 얼마만인가, 돌침대. 오랜만에 파란 하늘로 가득 찬 시야. 귓가에 물소리. 나는 눈을 감고 한참, 쿵스레덴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여긴 공기도 맛있어.
이러다 잠들겠는데, 도미닉은 뭐 하지? 조용한 주변에 고개를 살짝 들어 녀석을 살피니 배가 고픈지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저 녀석의 장비는 무엇일까. 나는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아비스코에서 산 손바닥보다 작은 이소가스와 초경량 스토브, 노란 패키지의 씨투써밋 어드밴처 푸드, 패키지 안에 깊숙이 넣기 좋은 티타늄 롱스푼. 장비에서부터 전문가 포스가 폴폴 난다. 그는 가스와 스토브를 조립한 뒤, 티타늄 컵에 계곡물을 가득 채워 물을 끓였다. 아, 나도 밥 먹어야 하는데.
미나. 너는 배 안 고파?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남은 여정을 생각하면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뱃속에 든 건 소시지 한 조각이 전부였으니까. 아침에 싼 가방을 머리로 헤집어본다. 조리도구가 어디에 있더라. 이렇게 이동 중에 먹을 줄 모르고 도구와 식량을 가방 곳곳에 넣어뒀더니 밥 한 번 먹었다간 짐을 전부 다시 싸야 할 판이다. 귀찮아. 저녁에 든든하게 먹지 뭐. 나는 손에 쥔 젤리팩을 열어 젤리를 두어 개 꺼내 물었다. 먹다 보니 맛있어서 하나 더.
난 점심은 됐어. 젤리로 충분해. / 너 그게 밥이라고?
남은 거리를 어떻게 걸으려고? 그리고 스위츠는 몸에 안 좋아. 적당히 먹어. 이봐, 한국에서는 입에 갖다 대도 안 먹는 게 이런 거니까 걱정 말라고. 녀석은 거의 누워서 젤리를 먹는 나에게 잔소리를 던졌다. 됐고, 너 어드벤처 푸드나 빨리 보여줘 봐. 궁금해. 그는 말을 돌리는 나에게 어깨를 으쓱하더니 팩을 내밀었다.
팩 안에는 양념 묻은 마른 밥알과 당근, 파, 콩 등의 채소가 반 정도 채워져 있었다. 밥알 사이 숨겨진 내부 절취선까지 뜨거운 물을 붓고 지퍼를 닫으면 밥알이 물을 흡수하며 조리되는 방식. 예전에 먹어본 전투식량이랑 비슷한 거네. 맛있겠는데.
그는 물은 붓고 잠시 기다린 뒤, 뜨끈하고 빵빵하게 불어난 봉투를 열어 몇 번 휘휘 저었다. 한 스푼 크게 떠서 맛을 본다. 음, 물이 더 끓었으면 나았겠지만. 그는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하며 스푼을 크게 떠서 내게 내밀었다. 먹어봐.
카레향이 살짝 나는, 약간 진 밥. 양이 제법인 데다 수분기가 촉촉해서 팩 하나를 다 먹으면 제법 든든할 것 같았다. 현명한 식량을 챙겨 왔구나.
더 먹을래? / 아니. 너 먹어.
덩치가 두 배인 녀석의 식량을 빼앗아 먹을 만큼 양심이 없진 않으니까. 나는 다른 모양의 젤리를 하나 더 꺼내 먹으며 그를 기다렸다.
insta @kim.san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