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스레덴 야생일기
Ep8. 에서 이어집니다.
장장 9화에 걸쳐 서론을 늘려놓고, 드디어 숲에 들어왔다. 쿵스레덴에서 숲은 문명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음 문명까지는 앞으로 약 백삼십육 킬로.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통신은 물론, 전기조차 없는 구간을 지날 예정이다.
Day 1
자작나무 숲을 걷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숲. 포동포동 살이 찬 뭉게구름이 나뭇가지 곳곳에 걸려있다. 좁은 틈으로 가끔 비추는 햇살이 오늘따라 따사롭다. 숲의 그늘을 벗어나자마자 관자놀이에 또르르. 배낭 공간이 부족하여 걸친 하드쉘이 벌써부터 땀방울을 부른다. 덥다. 벗을까? 멈춰서 정비를 하기엔 공정이 많다. 오늘은 배낭을 내려두는 것도 체력소모. 우선 갈 때까지 가보기로 한다.
걷다 보니 사진에서 본 데크길이 나타난다. 좁고 길다. 먼저 자리한 야생화를 존중하듯 굽이굽이 꺾인 데크가 많다. 자연을 거의 훼손하지 않은 트레일이라더니 이 말이구나. 일 미터 간격으로 나무 각재를 괴어 두고 그 위로 데크가 두 줄, 혹은 세 줄 지나간다. 지면과 닿아있는 각재는 고정 없이, 단지 툭 놓여있다. 가생이를 밟으면 가끔 덜그럭. 무거운 배낭에 온몸이 휘청댄다. 양손은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뒤로 넘어가는 무게중심을 앞으로 당기기 위해 애를 쓴다. 목구멍에서 묵직한 소리들이 제 멋대로 팡팡 터져 나온다. 아하, 오늘부터는 평지도 만만치 않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걷다가 저 멀리서 저벅저벅, 데크 위 낯선 발소리가 겹치면 고개를 들어본다. 맞은편에서 오는 하이커다. 어, 비켜드려야겠다. 생각하는 틈에 그들이 먼저 시범한다. 데크 옆 작은 바위로 가볍게 점프. 그리고 미소.
어머나 땡큐, 하이. / hej (헤이)
또, 걷다가 뒤에서 발소리가 여럿 들리면 이번엔 내가 먼저 가까운 바위로 몸을 옮긴다. 그리고 쿵스레덴 선배님께 배운 대로. 몸을 돌려 미소.
하이, 먼저 지나가셔 / 할로, 땡큐. / 좋은 여행해.
나는 오늘 그대들의 발걸음에 맞춰 바삐 걸을 생각이 없어요. 먼저, 먼저 가십시오. 여유롭고 능숙한 척, 미소 지으며 내 뒤에 오는 모두를 배웅했다. 흠흠, 미닉아. 나 절대 힘들어서 멈추는 거 아니다. 확실히 알아둬. 괜히 찔려서 먼저 해명을 하다 속내가 들통날까 신속히 시선을 돌린다. 오, 계곡이다.
미나. 쿵스레덴에서는 계곡물을 그냥 마셔도 되는 거 알아? / 응! 들었어. 물 맛이 대박이라던데? 저 계곡물도 마셔도 되나? / 안될 거 없지. 저기서 잠깐 쉬고 갈래?
나야 완전 좋지. 우리는 수풀 사이 벌어진 틈을 찾아 계곡으로 향했다. 짧은 내리막 구간, 경사가 제법이다. 흠, 잔모래도 있고 제대로 넘어지기 딱 좋잖아? 조심스레 한 발 딛자마자 미끌리는 발. 무게에 짓눌려 아릿한 무릎뼈. 쉽지 않군. 나는 재빠르게 배낭의 가슴끈과 허리끈을 풀고, 툭. 흙바닥에 배낭을 던졌다.
족쇄를 풀어헤친 듯한 해방감. 어깨뼈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공기. 오그라든 어깨가 그제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배낭의 영혼이 아직 등에 업혀있는 듯 묵직한 감각이 잔재하면서, 또 아주 가벼워서 날아갈 듯했다. 빨리, 계곡수 마셔보고 싶어!
나는 다섯 발자국 만에 내리막을 지나 수류가 가장 거센 곳으로 향했다. 신발이 젖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 쪼그려 앉은 뒤 두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서, 흘러가는 물살을 크게 한 컵 떠올렸다. 마셨다가 탈 나는 거 아니겠지? 작게 남아있는 의심에 살펴보는 손바닥 안. 작은 이물질 하나 없이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담겨있었다. 조심스레 한 모금 홀짝이니 눈썹이 저절로 찡긋거리는 시원함이 목구멍을 통과한다. 그리고 끝의 단맛. 입을 몇 번 다셔본다.
맛있다.
도미닉, 딜리셔스. 너도 어서 마셔봐. 고개를 돌려 그를 불렀을 때, 녀석은 이미 가득 채운 보틀을 꿀꺽꿀꺽 들이키고 있었다. 걷는 속도만큼 행동력도 빠르구나. 맛이 어때? 딜리셔스.
첫 계곡 시음회가 성공적이다.
insta @kim.san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