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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사원 Apr 04. 2016

[김 사원 #2] 이직을 시도하는 용기(1)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김 사원이 이직을 꿈꿀 때도 용기가 필요했다. 불만과 불안 사이에서 불안을 선택할 용기. 회사는 이번에도 구식 콘텐츠를 사들였다. 공짜로도 안 볼 콘텐츠를 유료로 팔겠다면서 영업 전략은 접대가 유일했다. 옆 팀 이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만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라리 거기가 나았다’며 한숨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사원은 먼저 머릿속으로 이직을 시도해보았다. 와르르. 상상만 했을 뿐인데 일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채용 공고를 뒤지고 회사 정보를 알아보느라 정신이 팔릴 며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을 시간, 합격 소식을 기다리며 초조함으로 채울 하루하루…. 그동안 회사 일은 일대로 꾸역꾸역 해내야 하고 퇴근 후 여가는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일상을 무너뜨리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얻을 수는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용기가 싹 달아났다. 내세울 경력도 마땅치 않으니 일단 지금 회사에 다니며 더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회사는 낡은 사업을 고집하고 상사들은 일하는 시늉만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네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뭘까? 바로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걸세. 


 그러다 용기를 낸 적도 있었다. 성탄절을 코앞에 두고 김 사원은 갑작스레 이직을 시도했다. 우연히 본 어느 회사의 채용 공고가 계기였다. 채용 분야가 마침 최근 관심사와 잘 맞아떨어진 데다 사업을 확장 중이었고 사이트와 마케팅까지 세련된 회사였다. 


송년회 약속을 미루고 방에 틀어박혔다. 자기소개서를 몇 줄 쓰다가 검색창에 회사 이름을 치고는 잡다한 글을 읽었고, 연봉이 오를지 오래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다시 자기소개서 화면을 띄우며 성탄절 연휴를 다 보냈다. 


수험생은 ‘시험에 합격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회사원은 ‘직업을 바꾸면 만사가 술술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하지만 막상 바라던 것이 이루어져도 상황이 뭐 하나 달라지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네.   


면접일은 지금 회사의 종무식 날이었다. 연말연시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 김 사원은 두 배로 뒤숭숭했다. 조촐하게 진행한 종무식은 타박 섞인 덕담(‘직원끼리 소통이 부족해! 새해에는 소통에 신경 쓰도록!’)으로 시작해 업무 방식을 두고 벌어진 논쟁(‘개발에서 협조가 안 돼요. 시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니까요’)으로 이어졌고 이내 체념(‘그만하고 퇴근이나 합시다’)으로 마무리되었다. 종무식이 예상치 못하게 난장판이 되는 광경을 보며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오늘 면접이 잘 끝난다면 바보들에게 멋지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뻥 뚫렸다. 


문득 머릿속에 ‘현실 도피성 이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기소개서는 성장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그럴듯하게 채웠지만, 사실은 별다른 대책도 계획도 없이 그저 지금 회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은 아닐까.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 사원은 재능을 살릴 기회, 더 많이 배울 기회를 찾고 있었다. 더 나아지길 바라는 욕구, 그 보편적이고 순수한 욕구가 우선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김 사원은 이미 현실 도피를 하고 있었다. 가망 없는 회사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체념한 지 오래였다. 적당히 다니다가 떠날 회사니 괜히 열정을 쏟을 필요도, 잘 보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정체될까 두려웠지만 포기하면 편했다. 그러니까 이직 시도는 현실 도피의 확장판이었다.


#이어지는 글 : [김 사원의 직장다반사] 이직을 시도하는 용기(2)

#인용문 출처 :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지음), 전경아(옮김),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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