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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사원 Apr 04. 2016

[김 사원 #3] 이직을 시도하는 용기(2)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이어지는 글 : [김 사원의 직장다반사] 이직을 시도하는 용기(1)


면접은 팀장과 일대일로 진행되었다. 회사도 팀장도 젊었다. 조직과 화합하는 사람보다는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을 원했고, 무엇보다 격무를 이겨낼 의지가 우선인 듯했다. 야근이 많은 편이라는 팀장의 말에 야근이면 몇 시 정도인지 묻자, 보통은 밤 열한 시 때때로 새벽 세 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 한 잔을 대접 받지 못한 탓에 김 사원의 입술이 자꾸만 앞니에 달라붙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민은 깊어졌다. 경력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과도한 근무가 역시 걱정이었다. 업무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면 철야에 휴일 근무도 괜찮아질까. 요리도 등산도 이제 포기해야 할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왔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야매 요리를 만드는 일, 고작 뒷산에 오르는 일이 앞길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합격 연락을 받은 상태도 아니건만. 


혹시나 주말까지 기다려봤지만 이번 주 안에 준다는 연락은 월요일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합격한다 해도 두 팔 벌려 달려갈 상태는 아니었는데 정작 기대를 접고 나니 좌절감이 밀려왔다. 좌절감을 받아들여야 했던 며칠도 일상이 무너졌다. 


-청년 : 그러면 인생이 어떤 모습이라는 겁니까?
-철학자 : 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연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분필로 그어진 실선을 확대경으로 보면, 선이라고 여겨진 것이 실은 연속된 작은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다시 말해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이라네. 


무너진 일상에 파묻혀 위로와 감동이 필요하던 때에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가볍고 희망찬 자기계발서를 예상했는데 철학자와 청년이 삶과 인간을 이야기하는 인문서였다. 첫 장부터 교훈은 분명했다. 삶은 선이 아니라 점의 연속이므로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김 사원의 상황에 맞게 바꾸자면 ‘이직에 실패한 상황은 지나간 점일 뿐 다음 점은 김 사원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라고 할까. 들어볼 만한 조언이었다. 면접 장면을 되새김질하며 탈락 이유를 찾는 일에 지쳐가고 있었으니까. 다시 바보들의 행진에 동참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철학자는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이며 공동체 감각을 기르기 위해 ‘자기수용→타자신뢰→타자공헌→자기수용’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철학자의 말답게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였다. 


이직에 실패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였으니 김 사원은 자기수용 단계일까. 철학자의 가르침을 따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바보 같기만 한 상사와 동료를 다시 바라보고 진실하게 대한다면 타자신뢰 단계일까.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해 공동체에 공헌한다는 타자공헌 단계에서는 어떨까. 고매하지 못한 업무도 성심성의껏 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될까. 

그때쯤 김 사원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에서 일상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이 될 실마리를 분명 얻었지만 질문은 남아있었다.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무책임한 사람과는? 열정과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과감히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 정말 나아질까? 


철학자는 대답한다.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적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말고.” 그리고 철학자와 청년은 하하 호호 끝인사를 나눈다. 

나부터 시작한다라…. 다시 한번 용기가 달아났다.


#인용문 출처 :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지음), 전경아(옮김),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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