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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사원 Aug 22. 2017

곱씹지 않아도 괜찮다. <더 테이블>

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해안에 고립된 군인이 되었다가(덩케르크), 일본 어느 섬에 끌려간 힘없는 국민이 되었다가(군함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맞고 짓밟히는 시민(택시 운전사)이 되곤 했다. 이름 모르는 서양 군인에게 마저 감정이입이 되어 함께 울고 웃었으니, 다른 구구절절한 인물들은 더 말해 뭐할까.


최근 영화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혼돈과 공포를 앞다투어 스크린에 그려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담대하게 고난을 해결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내 혼돈과 공포를 털어놓을 곳을 찾지 못해 우울하고 불안했다.



<더 테이블>은 소모시키지 않는다. 인물이 카페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나간 뒤의 모습을 쫓아 멀리 가지 않는다.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뭔가 위험하고 불법적인 일에 휘말린 것처럼 조장해 내 힘과 감성을 빼앗지 않는다. 시시하지만 편안한 일상이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하지 않아도, 곱씹지 않아도, 내 의견을 애써 표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영화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꽃잔이 문득 떠오르고 그들의 삶이 이따금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들과 나는 서로의 감정에 함부로 뛰어들지 않고 과하게 동요하지 않으며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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