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이자홍이 처음 맞닥뜨리는 곳은 살인 지옥이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닿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그 또한 살인죄다. '내 삶을 저 재판장에 올린다면!'하고 생각하니 첫 재판부터 마음이 찌릿해진다. 그렇게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을 거쳐 마지막 천륜 지옥에 이르면 어쩔 도리 없이 마음이 무너진다.
소방관이자 고깃집 알바이자 배달원이었던 자홍의 삶을 차사들은 '낮에는 불을 끄고, 밤에는 불을 피워야 했던' 삶이라고 말한다. 그 대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쓰리게 남는다. 오늘 죽을 줄 알았던들 사후세계가 있는 줄 알았던들 환생이 대단한 것인 줄 알았던들, 자홍의 이생은 지옥을 고려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대왕들이 그 삶의 대가를 자홍에게만 묻지 않음에, 그것만으로도 조금 다행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