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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Jan 16. 2019

멈춰있는 시간의 가치

도시 재생에 대해 생각하다.

대학생 때 학교 지원으로 홍콩과 상하이의 문화탐방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여행이었다. 그 여행을 통해 ‘멈춰있는 시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침사추이의 거리, 골목. 회색 베이스에 거대한 것 같으면서도 소박했던 그 거리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면 홍콩 대학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물론 영어가 안되니 어려웠을 테지만..) 거기에 마카오의 세나도 광장과 포르투갈이 남긴 청사 건물들도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하이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사학과를 나왔으면서 상하이가 4개국의 조계지였다는 사실을 왜 생각 못했을까. 지금이야 중국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했다지만 10년전 중국은 아직 오늘과 내일이 다를 정도로 한참 공사중이었다. 그러나 조계지가 된지 100년이 넘은 시간 속에서 4개 나라가 남긴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옛 조계지에 남아있던 프랑스식 건물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홍콩, 상하이에서 보았던 그 건물들과 거리들은 사실 그렇게 아주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옛도시지역, 구도심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래된 유적을 본 것보다 더 깊게 내 인상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 멈춰있는 시간들이 ‘적절하게 손 닿을 듯이 멈춰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아주 멀지 않은, 손 닿을 곳에 있는, 가볼 수는 없지만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멈춰 있는 시간이 있는 공간은 더 생생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이를 통해서 나는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이후 거리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잡힐 듯한 멈춰있는 시간들을 느낄 수 있는 거리들을 만나면서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 중심에 있는 여러 근대 건물들을 보며, 연희동과 연남동을 보며 홍콩과 상하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을 느꼈다. 도시 재생에 관심도 생겼고, 최근에는 장소 브랜딩을 통해 도시 재생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석사 논문 주제로 거의 3개월간 고민하기도 했다.(물론 지금도 고민중이다.)


왜 멈춰있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까? 아마 우리의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뒤로 갈 수 없다. 오직 앞으로만 전진한다. 그러다가 죽음으로까지 향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 숙명을 받아들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래도 시간을 멈춰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조금 느리게 갈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는 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은 장소를 만나면 거부하지 못할 숙명을 잠시 잊을 수 있게 되고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시절에 살지 않았더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원하기 때문에  멈춰있는 시간을 간직한 장소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장소들이 주는 가치가 있다. 이런 공간을 더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려는 것이 도시 재생으로 알고 있다. 물론 과제가 있다. 도시 재생을 통해 장소가 발전하지만, 실제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 즉 원주민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원주민들이 도시 재생이 아닌 재개발을 선호하게 된다. 도시 재생을 하려는 노력을 막아보고 싶고, 훼방하고 싶기도 한 것이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재생을 할 때는 지역의 공동체가 함께 재생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골목길 자본론을 쓴 모종린 교수님도 골목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공동체를 꼽는 것이다.


지금 나는 신도시에 살고 있다. 여기는 항상 앞으로 가는 시간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커서 어느 정도 공간과 시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함께 멈춰있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 자주 가려고 한다. 그 곳의 역사를 함께 느끼고 이야기하며, 멈춰있는 시간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보물과 같은 가치들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가 크면 목포에도 한번 데려가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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