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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Jan 29. 2019

융의 심리학으로 SKY캐슬을 읽다

제임스 홀리스의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독서감상문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융의 심리학을 중간 항로(The middle passage)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누구나 진정한 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모와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진짜 나를 감추고 살아간다. 그리고 만들어진 나를 진짜 나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들어진 나는 어느 순간 투사하는 대상이 사라지거나, 내면의 갈등 또는 극적인 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하는 중간 항로에 들어선다. 그 누구도 나 자신을 향한 여행에 손 내밀 거나 대답해줄 수 없다. 나 스스로 용기를 내어 개인화를 향한 중간 항로에 나서야 한다.



중간 항로의 향연, SKY캐슬.

이 책을 통해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인 SKY캐슬을 생각해보았다. SKY캐슬을 보면서 사교육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상류사회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융이 SKY캐슬을 본다면 이 드라마는 중간 항로의 향연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SKY캐슬의 중심인물인 강준상과 예서는 융이 말하는 중간 항로에 들어서게 된다. 강준상은 부모가 원하는 삶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예서 또한 스스로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서울 의대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여기에 혜나의 죽음은 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중간 항로로 들어서는 시발점이 된다.(중간 항로의 시작은 내부의 심리적 갈등 또는 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내면이 흔들리면서 시작된다.)


강준상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였음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결국 모든 것을 접겠다는 결심을 한다. 여기에 극렬히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강준상은 그동안 어머니의 욕망을 따라 살다 혜나의 죽음을 통해 각성하게 된다.


어머님 뜻대로 분칠 하시는 바람에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고
근 오십 평생을 살아왔잖아요! 

융의 해석을 빌리자면 부모로 인해 진짜 자신이 억압되어 살아온 강준상은 혜나의 죽음을 통해 진짜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며 그가 중간 항로에 들어섰음을 인정한 것이 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자신의 지금 모습이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절규를 하게 된다.


예서 또한 서울 의대라는 목표가 진정한 내가 세운 목표가 아니며, 자신의 삶이 부모로 인해 만들어져 왔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이야기한다. 


예서 또한 혜나의 죽음과 우주의 구속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서울의대를 가든지 말든지 이제 내가 결정할 거예요. 할머니가 이래라저래라 상관하지 마세요!


여기에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로스쿨 교수 차민혁이다. 차민혁은 자신의 집안을 ‘케네디 가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다. 피라미드는 그가 투사하는 가치와 욕망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그러나 결국 자식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아내에게는 이혼 요구까지 당하는 지경에 처한다. 투사하던 대상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서도 차민혁은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자기 자신 그대로를 지키려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중간 항로에 들어서야 할 때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 차민혁은 지금으로서는 콤플렉스 덩어리로써 평생을 홀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여전히 중간 항로에서 영원히 헤맬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짜장”이냐 “짬뽕”이냐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중간 항로를 통해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나와의 대화를 통한 차별화이며, 이 책에서는 그것을 차별화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정한 내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추상적인 표현임을 금방 느끼게 된다. 사회,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들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안전하고 확실한 성인으로 성장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사회화라는 과정은 인간이 사회 속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한다면, 이는 마치 배를 타고 한참 바다를 건너가다가 갑자기 외딴 무인도에 버려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간 항로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나를 찾으라는 것이 속세를 떠나 외딴 곳에 홀로 있으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도구는 바로 선택과 결정이었다.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결정일지를 묻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계속해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부모가 골라주는 것, 부모가 결정해주는 것,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왔다. 중국집에 가서도 남들이 짜장면을 먹으니까 나도 짜장면을 고른다거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짬뽕을 많이들 먹는 것 같으니까 짬뽕을 그대로 골라왔던 것이 사실이다.


성공적인 중간 항로 건너기를 위해 나 자신에게 해야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나 스스로 결정하는 연습’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사소한 것부터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연습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본능적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 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사소한 것부터 결정하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는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통해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부터 궁극의 질문인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에 다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를 찾는 길은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 책을 우연히 좋아하는 교수님께 선물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나를 찾을 수 있는 결론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와 내가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삶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큰 변화는 없었다. 단지 내가 지금 중간 항로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과 선택과 결정이라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 대신 내가 누군지 결정해줄 수 없다. 그것이 부모이든, 배우자이든, 아무리 중요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건강한 자아를 가진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나를 찾는 길의 답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이 융의 결론이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사람의 길이 반드시 내 길은 아니며, 우리가 찾아 헤매는 것은 결국 바깥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p.250


이 책은 제목에 ‘마흔’이 들어가 있어서 마흔이 되기 직전에 읽어야 할 것만 같지만 스무 살이든 서른 살이든 최대한 빨리 읽을수록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그냥 한글로 중간 항로라고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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