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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Jul 28. 2018

분노사회를 넘어 포용사회로

잃어버리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을 추모하며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분노를 조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 시민의식의 발달이 더 많은 정보를 인식하게 하고 더 높은 가치판단을 하게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더 고차원적인 시민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우리는 옳고 그른 가치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더 대중적으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가 너무 쉽게, 더 많이 분노하게 되었고, 점점 높은 기준과 잣대로 서로를 포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우리 사회에서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고발들을 우리는 수시로 판단하고 비판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자주, 수시로, 작은 일에도 일어나게 되면 우리의 삶과 감정을 피폐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했던 사람들과 조금 차이와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서로에게 분노하고 등을 돌려버리는 태도는 우리 공동체를 더 큰 공동체로 만드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나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높은 기준과 잣대로 서로에게 분노하고 비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함께 연대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서로에게 쉽게 분노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그래서 포용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지 못하게 된다. 너무나도 높은, 그래서 사람이 지키기 너무나 어려운 기준과 잣대만을 서로에게 들이대는 분노사회에서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은 실수를 하는 존재다. 인간에게 절대 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완벽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아주 큰 해악이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실수에 대해 더 큰 마음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그래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더 큰 불의에 분노해야 한다. 한 연예인의 잘못된 실수나 발언에 분노하기에 앞서 우리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힘겹게 만드는 거대한 악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 작은 분노들은 엄청나게 큰 불의를 위해 아껴둘 필요가 있다. 높은 기준과 잣대로 서로를 옥죄이기 보다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를 인정했을 때 포용받을 수 있다는 마음을 서로가 느낄 수 있도록 독려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럴 때 만들어지는 거대한 연대의 힘으로 더 큰 불의와 맞설 수 있게 된다.


실수하더라도 받아주고 포용해 줄 수 있다는 마음을 서로가 느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더 넓은 서로의 연대가 필요하고 분노의 마음을 넘어선 포용의 자세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로의 실수와 다름에 쉽게 분노하게 되는 분노사회를 넘어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더 큰 연대를 기반으로 한 포용사회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진보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만약 그런 사회였다면, 잃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과 지금 함께 웃고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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