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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Apr 21. 2021

서울엔 우리집이 없어도 될까?

재택근무는 서울에 우리집이 없어도 되는 삶을 가져올까?

작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에서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자신만의 철학으로 지은 단독주택들을 소개한다. 이쁜 외관부터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내부가 잘 설계된 집들을 보며 나도 단독주택이라는 로망을 키울 때가 있었다. 심지어 경매로 나온 땅이 없나 찾아보기도 했다.


여유로운 마당, 멋진 외관,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출처 : JTBC)

 
그런데 정말 서울에 우리집이 없어도 될까? 어떤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은 거주지로서 대도시를 선호하는 이유로 편의시설, 자녀교육, 직주근접을 주 요인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는 도시를 생각해보면 사실 서울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울을 선호하고 서울로 돈과 사람이 집중되면서 집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물론 재산 증식을 위해 서울에 집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이 많이 어색하다. 어쩌다보니 나는 어릴때부터 주로 신도시 또는 신도시에 인접한 곳에 살아왔다. 신도시들은 아무래도 서울과 떨어진 곳에서 사전 계획 후 대규모 택지 위에 조성되다보니 정주여건이 서울에 비해 쾌적하다. 나는 집 앞에 늘 산과 공원이 있었다. 심지어 집 바로 앞 산에 약수터가 있어서 산공기를 마시며 물을 뜨러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약속이 있어서 강남에 가면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서 종종 숨이 막혔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자연과 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도시는 나에게 이상과 현실의 접점으로 적합한 정주 여건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금 사는 운정 신도시는 다른건 조금 마음에 안들어도 이전에 살았거나 경험했던 산본이나 평촌, 집 근처에 있는 고양신도시보다도 녹지가 훨씬 많아서 좋다.(전쟁에 대비해서 넓찍하게 신도시를 계획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하지만 결국 편의시설, 자녀교육, 직주근접에 있어서 서울이 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쾌적한 신도시보다 서울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러면 편의시설, 자녀교육은 일단 뒤에 두고 직주 근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직장이 내가 사는 곳으로 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면 요즘 증가하는 추세인 재택근무가 더 활성화되면 서울엔 우리집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보니 작년 한국은행에서 작성한 자료를 찾게 되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재택근무 비율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증가했으며, 코로나 이후에도 일시 조정이 있더라도 추세적으로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이점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개인은 통근시간을 아껴서 이동비용이 줄고,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으며 기업 입장에서도 대도시에 상업건물을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기업 대상 조사에서는 대기업의 53%가 재택근무 확산을 전망했다고 한다. SK텔레콤에서는 직원들이 10~20분 거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거점 오피스를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서는 재택근무의 확산이 우리보다 더 빨라 보였다. 미국에서는 작년 4~5월 재택근무 비율이 절반에 달했고,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IT대기업들도 계속해서 재택근무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점차 늘어가던 재택근무 비율이 코로나19로 강제되고 개인과 기업이 생산성 측면에서도 효용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카디프 대학교의 알란 펠스테드와 사우스햄튼 대학교의 다르야 류시케가 봉쇄령 동안 재택근무를 한 영국인 노동자 천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앞으로도 재택근무를 계속 병행하고 싶다고 답했다. 맥킨지의 연구에서는 응답자 5명 중 4명이 집에서 일하는 게 좋았다고 대답했다." (출처 : 파이낸셜타임즈 The path to the post-Covid city (2020-03-12), 최효정 번역)

코로나19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출처 : 효성FMS 홈페이지)


그러면 앞으로 재택근무로 인해 서울에 우리집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코로나19 판데믹의 직접적인 영향과는 관계가 없지만 실제로  '서울엔 우리집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인구는 2010년 1008만에서 2020년에 960만으로 줄었고 경기도 인구는 2010년 1161만에서 2020년 1340만으로 늘었다고 한다. 출산율을 비교해보면 2019년 출산율은 0.92명이었는데 서울시의 출산율은 0.72로 전국의 출산율 평균보다 한참 아래에 있다. 이대로면 서울에 우리집이 있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거기에 재택근무는 궂이 서울에 거주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제공하고 이로 인해 서울의 인구는 더더욱 줄어들 수 있다.

실제로 서울에 우리집이 없는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출처 : 통계청)


대도시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편의시설, 자녀교육이 직주근접보다 더 우선하는 요인인 것이 사실이다. 또한 서울의 집은 실거주가 아니라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면도 강하다. 하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환경에서 일과 생활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게 되면 결국 실거주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서울에 집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줄고 서울의 집값도 안정되지 않을까?

나는 재택근무 확산과 더불어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자체들은 지역 내 일자리 증가를 위해 기업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세금 감면, 보조금 지원, 대규모의 토지 제공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하지만 재택근무의 증가를 보며 지자체들이 기업을 직접 유치하는 것보다 기업의 스마트 오피스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양한 편의시설 유치와 지역 교육 인프라 확보 및 혁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가 사는 운정신도시만 해도 유치원이 부족해서 아이가 유치원을 못갈까봐 전전긍긍한 것이 사실이다. 일과 생활이 거주지 안에서 가능해지고,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이 충분하고,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 궂이 서울에 우리집을 가질 필요는 줄어들 것이다.

재택근무가 주가 될 정도로 확산된 세상은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았다. 각자가 살고 싶은 지역에서 일과 생활에서 함께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자연과 조화된 단독주택에서 여유롭게 업무 준비를 하거나 집 근처 핫플레이스 카페에 정기 이용권을 끊어 업무를 본다.(실제로 우리 동네에는 재택근무자를 위해 정기권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다.) 아니면 지자체에서 유치한 회사 스마트 오피스에 가서 업무를 본다. 점심에는 동네 맛집에 찾아가 여유롭게 식사를 하면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점심식사 #여유 #재택근무 #동네맛집) 아이가 있는 직장인은 보육시설의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려오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하루 업무를 마무리한다. 회사는 한 달에 한번 또는 공식적인 회사 일정이 있을 때만 서울에 있는 본사에 방문한다. 삶의 질이 올라가면서 업무 효율도 개선되어 재택근무는 더욱 확산된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기업들은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고 주변 환경이 좋거나 지자체가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그런 세상이 오면 나도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에 나오는 집 처럼 좋은 집을 지어야 겠다. 지하에는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작업실을 만들어야지. 처마와 마루를 길게 빼서 차 마시는 공간도 만들어야겠다. 큰 다이닝룸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초대해야지. 내가 주로 요리를 하니까 부엌 동선을 꼭 신경써야겠다. 상상만해도 여유롭고 행복해진다. 다시 경매로 땅을 알아봐야 하나?  이참에 마당에는 수영장이라도 파야겠다. 일상이 휴양지에서의 삶이 될 것만 같다.


내가 봤던 집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이었다. 마당에 수영장만 있으면 딱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리 직장만 해도 재택근무는 머나먼 소리이고, 나는 내일도 한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서 서울에 출근해야 할 것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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