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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May 31. 2021

피카소에 대한 평가를 보며 느낀 몇 가지 단상

오늘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레터에는 피카소에 대한 글이 담겨있었다. 글의 요지는 피카소가 말년에 미술계와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면서 더 이상의 도전정신과 혁신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성공이 오히려 그의 퇴락을 가져왔다는 비판이다.


1953년 말경에 피카소는 일련의 소묘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2개월이 지났을 때 작품의 수는 180점에 이르렀다. 굉장히 열심히 그려진 그 그림들은 자전적이다. …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이 지닌 의미가 워낙 복합적이고 신비스럽고 개인적이라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건방진 일이라고 짐짓 꾸며댔다. 한 번 더, 오, 피카소! 하고 미사여구를 나열하면 충분했다. …
 
성공은 동시에 갈망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살아남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수단을 약속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썩어가는 길일 위험이 있다. 가장 빈번하게 들려오는 비판은 이렇다. 즉, 아무개는 성공한 후로 똑 같은 일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괴로움으로 겪었던 그 성공이 어떻게 그에게 손해를 끼쳤는가를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피카소가 자신의 성실성을 잃었다, 그래서 그는 타락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잘못일 것이다. 그와 반대로 그는 자신의 본래의 자아에 완고할 정도로 충실했다. 끼쳐진 손해는 그가 발전을 저해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가 현대적 현실과의 접촉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사회 속으로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실패한다는 것이 배척당하고 있음을 뜻하듯이 말이다. 피카소는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 속으로 동화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는 지금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존 버거,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미진사, 1984(초판)


사실 나는 피카소에 대해 잘 모른다. 이번 주 딸과 피카소 전시회를 가기로 해서 아이와 함께 읽은 동화책 정도로만 피카소를 알고 있을 뿐이다.(사실 동화책이 상당히 길어서 어릴 때 그림을 엄청 잘 그려서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다가 파리에 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데까지만 읽었다. 내가 아는 피카소의 삶은 아직 거기까지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에 대한 권위를 해체하고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흥미로웠다. 그것이 고유 명사나 다름없는 피카소라면 더욱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사람은 한 쪽 말만 듣고 평가하면 안된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 서술된 피카소에 대해 찾아봤다.


제 2차 세계 대전 직후 피카소는 남 프랑스에 있으면서 주로 석판화와 도기의 제작에 열중하였다. 어느 것이나 당시 새로이 손을 댄 분야였으나 이 분야에서도 그는 현대미술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 평가 받은 그대로 발견하고 학습을 연구하고, 개척하고, 창조하는 왕성한 의욕을 불태워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또 1950년대부터는 걸쳐서는 벨라스케스, 들라크루아, 크라나하, 마네, 다비드 등의 명작과 대결하여 이것을 자기의 양식화한 독특한 모작에서 새로운 진로를 추구하였다.

위키백과 피카소 항목 중


정반대의 평가이다. 존 버거는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을 주제의 변주 정도였다고 평가절하 하지만 위키백과에서의 피카소는 말년에도 명작을 새롭게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며 도전했다고 추켜세운다.(관련 서적이 '앙드레 말로 피카소를 말한다' 인것 보니 아마 앙드레 말로의 시각에서 서술된 내용이 아닌가 싶다.) 나는 피카소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의 말년은 도전이었을까 퇴락이었을까. 아니면 두 입장 모두 피카소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피카소의 말년에 대한 두 가지 평가를 보며 몇 가지를 생각해본다.


첫째, 세상에는 하나의 대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위대한 거장이라고 평가받는 피카소도 이런 양극의 평가가 존재하는데 하물며 나는 어떠랴.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맘 편하게 사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둘째,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만 평가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라고 세상 모든 일을 다 평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우리는 TV에서 신문에서 SNS에서 말하는 것들을 나의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어릴때나 지금이나 자기의 의견이랍시고 이야기하면서 '신문에서 봤어', 'SNS에서 봤어'라고 이야기 한다. 그게 진짜 자기의 생각인가. 어쨌든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평가는 그냥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나보다 해야지 그것에 동조되는 것 만큼 의미없고 피곤한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번 주말에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가서 내가 직접 본 피카소 그대로를 받아들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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