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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May 20. 2021

횡단보도 앞 고인물의 운명은?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 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우리 단지 주변 상황.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실명은 숨겼다.

우리 집 주변에는 아직 상권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신도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집 앞 학교 부지가 조만간 상업지구로 바뀌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통 대부분의 물건은 인터넷이나 대형마트를 통해 구입하지만 정말 급한 상황이나 맥주 한캔 정도를 사고 싶을 때는 슈퍼나 편의점이 아쉬울 때가 많다.

집 앞 편의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앞 5개 정도의 상가가 있고, 그 중 하나가 편의점A이다. 아마 아파트가 입주하는 시점부터 입점해 있었던 것 같다. 간판도, 매장 내부도 너무 오래된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튀김 종류도 판매를 하기 때문에 오래된 기름 냄새가 심하다. 24시간 운영하지도 않는다.

대안이 없던 것은 아니다. 집 건너편에는 큰 규모를 가진 편의점B가 있었다. 매장도 크고 쾌적했고 품목도 다양했다. 그러나 큰 도로 때문에 편의점B가 있는 지역과 우리 단지는 사실상 지역이 단절된 상황이었다. 물론 길을 건너갈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집을 기준으로 큰 편의점까지의 직선거리는 150미터이지만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 편의점까지 가는데는 약 300미터 정도의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편의점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편의점인데 거리가 편리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집 앞 편의점을 갈 수 밖에 없었다.

편의점B는 두 부부께서 운영하시던 곳이었는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두 분이 돌아가면서 매장을 보고 계신 것 같았다. 주변은 주로 다세대 주택과 개인 주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아파트 단지가 있긴 하지만 아파트 입구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대형 슈퍼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다세대주택이 주요 배후인구였다. 심지어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편의점이 자리잡고 있어 얼마 되지 않는 배후인구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이 지역은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배후인구로 승부를 봐야 하는 지역이다.) 매장에 갈 때마다 너무 매장에 사람이 없어서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자주 들었다.


편의점이 처한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자면 2020년 기준 현재 우리나라 편의점 당 인구는 1,200명이라고 한다. 일본은 2천명이 넘고 지난 2017년 우리나라의 편의점 당 인구는 1,500명이었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이렇게 편의점 숫자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근접출점 제한, 카드 수수료 인하 등 정책 지원으로 인한 수익 증가 기대, 은퇴 연령의 증가와 낮은 진입장벽 등이 있다고 한다.


집 앞 편의점A가 작은 이유는 우리 단지의 세대수가 적기 때문인데 그래도 약 660세대를 2019년 평균 가구 인구 수 2.4명으로 계산해보면 약 1,600명이라는 배후인구가 되니 평균 이상의 배후인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한 매장에 24시간 운영이 아니어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2017년 이베스트 투자증권에서 발표한 적정 편의점 수는 42,700개 이고, 당시 인구수로 계산해보면 1,200명당 1개가 나온다.)

반면 편의점B는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다른 편의점까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얼마 되지 않는 배후 인구를 두고 경쟁하다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는 얼마 전 편의점C가 새로 들어섰다.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생겼다. 우리 단지 앞에 조만간 횡단보도가 설치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좌회전이 되지 않아 불편한 상황에서 수 차례 민원 끝에 횡단보도 설치안이 통과되었다. 횡단보도가 설치되면 건너편 편의점C로 가는 실제 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계산을 해보니 실제 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300미터 정도 거리에서 순식간에 150미터로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엄청난 거리 차이의 변화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길을 건너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사실상 단절되어 있던 지역이 하나의 지역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동을 포함해서 반경 300미터 기준으로 7개 동이 저 편의점의 배후인구로 포함될 수 있는데 그렇게 치면 약 1,200명의 배후인구를 놓고 순식간에 편의점A와 편의점B가 맞붙는 모양새가 된다. 편의점A의 독점체제가 깨지는 것이다.

과연 횡단보도가 설치된 이후의 두 편의점의 상황은 어떻게 변화될까? 길 건너 편의점C는 넓고 쾌적한 매장에 다양한 품목을 보유하고 있고 앞에는 밝은 조명 아래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잘 구비해두었다. 매장 안 직원들도 유니폼을 잘 갖춰 입고 손님을 맞이한다. 하지만 편의점A는 좁은 매장에 품목도 다양하지 않다. 심지어 매장은 오픈 이후 리뉴얼 된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고 기름 냄새가 매장 안에 배어 쾌적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거기에 편의점 앞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긴 하지만 조명이 전혀 없어 늦은 밤에는 불편하다. 24시간 운영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늦은 시간에는 몇 명 오지도 않을 것 같으니 운영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 같다.

나는 두 매장을 비교해보며 고객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느낀다. 어차피 갈 데가 여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태도의 차이가 매장과 사람을 통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횡단보도가 생긴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걸어가더라도 편의점C를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얼마전 고객 데이터 분석 기업인 던험비에서는 한국 편의점 선호지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데이터가 나오는데 편의점 선호요인 중 편의성과 쇼핑경험의 중요도가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편의성과 쇼핑경험에서 편의점A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뒤쳐진다. 거기에 근접성까지 개선이 된다고 하면 두 매장의 경쟁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던험비에서 조사한 한국 편의점 선호지수 보고서 내용 중 편의점 선호요인. 편의성과 경험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업을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업의 개선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기업들이 변화하는 환경속에서 고객관계 차원에서의 팬덤에 주목하고, 고객경험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비즈니스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 상황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다가 무너진 기업이 수두룩하다. 그런 기업들을 반면교사 삼아 최근 기업들은 새로운 이슈와 아이템을 선점하고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큰 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심지어 작은 구멍가게까지도 생존을 위한 꾸준한 혁신이 기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조금만 생각을 했다면 아직 단지 내 상가 중 비어있는 한곳으로 웃돈을 줘서라도 옆 가게를 옮기게 하고(어파피 부동산이라 옮겨가도 장사에 지장은 없으니까) 매장을 좀 더 확장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10년쯤 되었으니 리모델링도 한번 했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면 천장이 낮고 환기도 잘 안되니 특히 환기에 좀 더 신경을 써서 리모델링을 했을 것이다. 24시간 운영이 부담스럽고 작은 공간의 한계가 느껴진다면 무인 편의점으로 전환해보는 생각도 해볼만 했다. 아직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않았고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 거란 보장은 없지만 사실 나는 한참을 돌아 편의점C로 맥주를 사러 가면서 집 앞 편의점A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하나가 지역을 묶고 독점체제였던 동네 편의점 시장을 경쟁체제로 바꿔버리는 것처럼, 빠른 변화가 이루어지는 환경 속에서 작은 변화 하나가 업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일으킬 수도 있다. 모든 외부 변수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외부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나의 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혁신하고 고객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편의점B 부부가 조금만 더 버티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단지 앞 횡단보도 설치를 편의점A 주인분은 알고 계실지 궁금하다.


우리 집 앞 고인물 편의점은 횡단보도가 가져올 변화를 알고 계실까



참고내용

https://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805975.html?_fr=mt0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033021540161189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102317154123714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0/15/2020101500085.html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29&clasCd=7
https://www.yna.co.kr/view/AKR202103030645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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