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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Jun 09. 2021

위대한 위버멘쉬, 유상철을 추모하며

유상철 선수, 감독, 사람을 기억하다.

2002년에 한국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폴란드전에서 수비 사이로 날아들어가 당시 세계 4대 골키퍼로 불리던 두덱의 손에 맞고도 들어갔던 유상철 선수의 두 번째 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선진국의 그늘에 가리워졌던 그 시절, 국가대표 축구는 우리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열망이 응축된 상징이었고 월드컵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전쟁터였다. 멕시코전은 좌절의 순간이었고 네덜란드전 패배는 우리가 100년전 나라잃은 약소국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절망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예선 탈락은 결정이 되었고,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불리던 차범근 감독은 중도 경질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벨기에전이 시작되었다. 사실 경기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갔는지는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선수들은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악에 받힌듯 보였다는 것이 기억날 뿐이다. 그리고 유상철의 골이 기억난다. 프리킥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골대 근처까지 올린 공을 유상철 선수가 끝까지 쫒아가서 발에 갖다댔고 그것이 들어갔다. 전술적으로 만들어낸 골이라기 보다는 정말 악에 받혀 만들어낸 골이었다. 이대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투혼을 그를 통해서 봤다. 볼을 향해 악과 깡으로 쫒아가던 그의 모습이 폴란드전의 골보다도 뇌리에 남아있다.


유상철하면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멀티플레이어다. 박지성보다도 유상철은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해냈다. 그만큼 축구 지능이 좋다는 것이고, 어떤 포지션에 가져다 놔도 자신의 몫 이상을 하는 선수라는 것이다. 국가대표로서 해당 포지션을 전담하는 선수를 밀어낸다는 것은 보통 선수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모든 포지션을 그렇게 소화해냈다. 그것 또한 그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선수 은퇴 후 그를 처음 본 것은 슛돌이 2기 방송이었다. 유상철이 합류한 슛돌이 2기는 이강인의 원맨쇼였는데 유상철은 그저 뒤에서 아빠처럼 아이들을 즐겁게 지도했다. 그런 그가 프로축구에서 고생을 참 많이했다. 부임하는 팀마다 정상적이지 못했고, 그를 어렵게 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강등 위기의 인천도 구해냈다.


췌장암. 참 쉽지 않은 병이다. 암 치료의 새로운 기술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췌장암은 치료가 어렵고, 완치가 쉽지 않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 치열한 삶을 마무리 지었다.


다들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퍼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그를 기억의 저 너머로 보낼 것이다. 현실은 늘 치열하고, 우리는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일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후회도 빨리 잊어버리니까. 지금 최선을 다해서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서 그를 추모한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에게 투혼과 기쁨을 선사했던, 죽음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를.


그의 축구 인생은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도전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비라는 별명답게 항상 선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철학가 니체는 어떠한 고난과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사람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표현하는데 초인은 강한 긍지와 용기 그리고 민활한 지혜를 갖추면서도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의연하고 도전적이지만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과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유상철은 니체가 생각했던 초인에 가까운 남자였다.


멋진 위버멘쉬, 유상철이 자신의 고난과 고통을 극복해내고 천국의 프로 감독이 되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 짧았지만 치열했던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초인과 같았던 그의 삶을 추모합니다.(출처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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