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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Sep 16. 2021

맵고 짠 꼰대 부장님의 위로

박찬국 '사는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어떤 위로가 좋은 위로일까


고통과 상처로 삶의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힘내'라는 말은 '언제 한번 밥먹자'라는 말처럼 너무 막연한 소리인 것 같고 요즘은 '포기해도 괜찮다'라거나 '네 잘못이 아니야', '내 마음을 이해해'라는 말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위로도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힘들어도 이겨내라',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은 너무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게 아닌가 싶으면서 말하는 내 자신이 '꼰대'로 느껴진다.


나 또한 '일이 이렇게 풀리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는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사는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라니. 나도 모르게 '네. 힘든데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니체의 대답은 의외였다. 마치 내가 철학자가 아니라 연세 많으신 부장님께 조언을 구한 것이 아닌가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니체가 준 위로는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인생의 의미가 뭔지 묻지마. 판단하는게 멍청한거야'라거나

'삶에 대한 판단, 즉 삶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것이 삶을 긍정하는 것이든 부정하는 것이든 궁극적으로는 결코 참일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증후(현상)로서만 가치를 지닐 뿐이며 증후(현상)로서만 고려될 수 있다. 그러한 판단들은 그 자체로는 우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들 삶의 가치는 평가될 수 없다는 이 놀랍고 미묘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네가 힘든 것을 가지고 세상 탓을 하지마. 그건 나약한 태도야. 노력을 해야지'라거나

'니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사회 탓이나 남 탓으로만 돌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세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 '니체가 말하는 원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은 선한데 상대방은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나 사회 혹은 조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훌륭하고 잘난 내가 잘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남들이 불행하기만을 바랍니다.'


'지금 상황을 받아들여. 발전의 기회로 삼고 더 열심히 해.(라떼는 말이야~)'라거나 

'운명애의 사상에 엄습되었을 때 니체는 책이 거의 팔리지 않을 정도로 전혀 유명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에 만족했고 그것을 긍정했습니다. 그는 설령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이 처한 운명적 상황을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편한거만 좋아하고 말이야.'라거나 

'그대들이 바라는 안락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종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조소해야 할 것, 경멸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몰락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힘들면 운동을 해!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는 거야'라거나

'자기 자신이 되는 사람이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하면서 자신을 일정한 방향으로 길러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 '단순히 감정과 사상을 훈련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가장 먼저 설득시켜야만 하는 것은 바로 신체다.'



꼰대 부장님 같은 맵고 짠 위로가 나쁘지 않았던 이유


이런 위로는 사실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당황스러울 것 같다.(이렇게 말하는 나는 그럼 옛날 사람인가..) '괜찮다', '포기해도 된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 받아들이고 이겨내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꼰대로 느껴지면서 다음에는 위로를 받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계속 읽으면서 만난 니체가 전해준 위로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극복하고 이겨내라는 니체의 위로에서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삶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 오히려 꼰대같은 그의 조언에서 진심으로 극복하고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실제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마음도 가벼워졌다.(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함께 공감하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좋은 위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로도 결국 그 사람이 다시 힘을 내고 일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니체의 위로는 맵고 짜지만 위로의 궁극적인 목적에 더 가까운 위로가 아닐까? 음식도 단짠단짠하게 먹으면 더 맛있는 것 처럼 위로도 단짠단짠하게 받을 때 더 빨리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니체가 전한 위로가 고루하기 보다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요즘의 위로가 너무 단맛만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책의 마지막에 작가가 니체의 입장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는 조금 고루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마지막에 옮겨와 본다.


니체라면 동정하지 않고 이렇게 외치겠지요. 돈에 연연하지 말고 온 열정을 다 바쳐 그대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리고 어떠한 곤경이 와도 그것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흔쾌하게 받아들이라고. 그리하여 니체 자신이 말을 건네는 공동체에 속하여 이 세계를 변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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