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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Oct 17. 2021

BTS, 기생충, 킹덤, 오징어 게임

'쪼'가 없어야 '망조'가 들지 않는다.

오늘 지인인 PD 형님과 식사를 했다. 형님은 요즘 대학원에서 대중문화를 소재로 강의를 하고 계셨다. 50년대부터 시작해 외국 음악과 우리 음악을 비교해가면서 외국 대중음악으로부터 한국음악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고찰해보는 강의였다.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은 두 가지 였다.



첫번째는 외국의 메인 스트림이 수용되어 우리나라의 메인 스트림이 되는 데까지의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형님이 말씀하셨던 부분은 과거에는 외국에서 유행하던 음악이 우리나라로 유입되어 우리 스타일로 재해석되는데 까지의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었지만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70년대 소프트록, 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시기 우리나라에선 포크송이 유행하고 있었고 HOT로 시작된 아이돌 문화가 유행을 시작하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힙합이 유행했다.


외국의 문화적 메인 스트림과 우리의 메인 스트림의 싱크가 맞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특히 유튜브와 같이 대중문화가 실시간으로 공유될 수 있는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외국과 우리의 문화적 메인 스트림의 싱크가 거의 실시간으로 맞게 되었고, 거기서 BTS와 같은 성공도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 이규탁 교수는 북저널리즘에 기고한 글에서 정치, 경제, 기술의 발달로 해외의 대중음악과 우리의 대중음악의 시차가 거의 사라졌고 글로벌트렌드가 바로 반영되는 환경이 조성되어 케이팝이 글로벌한 음악으로서 더 많은 수용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 인터넷의 발달과 대중화,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한국 진출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한국과 중심부 사이의 공간이 압축된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한국과 글로벌 음악 산업 사이에 존재하던 시차가 거의 사라졌다. (...) 2010년대 말 현재에는 글로벌 최신 힙합 트렌드와 국내 힙합의 음악 질감이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다."(이규탁, 갈등하는 케이팝 중)



두 번째는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글로벌과 로컬의 문화적인 선을 절묘하게 줄타기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Jpop이 상당히 트렌디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90년대 일본의 시티팝을 들어보면 지금도 상당히 스타일리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아이돌과 우리나라의 아이돌을 비교해보면 일본의 아이돌은 너무 로컬에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대까지 일본 드라마가 준 신선함이 있었다.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치중되어 있던 한국 드라마의 식상함을 일본 드라마로 상쾌하게 입가심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나는 일본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너무 일본만의 로컬 문화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걸 형님과 나는 '쪼'라고 표현했다. 뭔가 그들만의 스타일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때 속된말로 '쪼'가 있다고 표현을 한다. 포크송 가수 이야기를 하다가 그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왔는데 최근 '내일은 국민가수'에 출연한 박창근씨의 목소리와 같이 심한 바이브레이션이나 기교가 별로 없으면 오래된 노래라도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와닿지만 '쪼'가 심한 포크송 가수분들의 노래는 오래 듣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름 대중문화의 내수 기반이 탄탄한 국가들 중 일본, 중국, 인도의 콘텐츠가 그런 '쪼'가 심하다. 인도의 콘텐츠들을 보면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뮤지컬이 시작되고 등장인물들이 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런 로컬적 요소가 너무 강하면 아무리 미장센이 화려하고 소위 '땟감'이 좋은 영상이라도 오래 봐주기가 어렵다. 쉽게 말해 '패러디'가 잘 된다면 로컬성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패러디가 된다는 건 '쪼'가 느껴진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출처 : tvN)


최근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콘텐츠들을 생각해봤다. '기생충'은 전 세계적 고민인 '양극화'를 한국적인 소재로 풀어냈고, '킹덤'과 최근 성공한 '오징어 게임'은 각각 좀비 장르와 데스게임 장르의 한국적인 변주였다. 또한 우리는 BTS의 성공에 환호하지만 최근 가장 성과가 컸던 '다이너마이트'나 '버터'의 작곡가가 '서양인'이라는 점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작곡한 노래로 성공을 했으니 그것은 반쪽짜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세계적으로 성공한 우리 콘텐츠들의 특징이 유니버설한 요소를 한국적으로 소화하면서 글로벌과 로컬의 알 수 없는 오묘한 선을 절묘하게 줄타기 했다는 것이다.


"영미 음악 장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 한국 정서에 잘 맞는 멜로디 라인이나 독특한 창법, 음색을 결합하거나 무대 위에서 군무를 추고 독특한 비주얼 이미지를 구축하는 식으로 일반적인 영미 음악 장르 카테고리로 구분하기 쉽지 않은 혼종적인 색채를 드러낸다. (...) 케이팝은 월드 뮤직이 요구하는 전통적인 요소를 거의 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전통 음악을 벗어나 보편적인 글로벌 음악 장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한국적인 맥락에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 한글 가사, 음악을 혼합하는 방식, 무대 퍼포먼스와 춤, 의상, 뮤직비디오, 기획사-아이돌 시스템, 도덕주의 원리 강조, 팬덤의 수용 방식 등이 모두 결합되어 독특한 특징이 형성되었다."(이규탁, 갈등하는 케이팝 중)



결국 나는 한국 대중문화가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문화를 연구하시는 더 뛰어난 전문가분들의 생각들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지속 가능성'은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쪼'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글로벌 수용자들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성공이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더 넓은 수용층에게 와닿을 수 있는, '쪼'가 느껴지지 않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글로벌과 로컬의 오묘한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최근의 성공에 고무되어 '우리가 만드는 문화가 세계에 먹힌다'라고 생각하다보면 고유의 '스타일'이 굳어질 수 있고 '쪼'가 느껴지는 순간 한국 대중문화는 한때 유행했던 로컬 문화가 되어버릴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문화들의 특징을 보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가 아닌 외부의 문화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경우가 많다. 지리적으로 다양한 인종이 교류했던 지역의 문화들이 당시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어 역사책에 기록되어 왔다. 나는 너무 우리만의 콘텐츠, 우리만의 문화로 세계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때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 때 역설적으로 우리 대중문화는 오히려 외국 문화를 따라하기만 급급했다.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급체'한 것만 같은 콘텐츠들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이제는 유니버설한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소화할만한 역량이 충분하다. 우리만의 '쪼'를 만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 문화를 수용하는 글로벌한 고객에게 친절하게 다가가 지속적으로 수용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외부 문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그 스타일이 변화하는 것이 한국 대중문화의 특징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남의 것을 따라하기만 급급하다고 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 아래 새로울 것이 없고, 오히려 실시간으로 문화를 공유하는 요즘 시대의 흐름과 조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우리 콘텐츠들의 성공을 잘 곱씹어 봐야 한다.


얼마전 유튜브를 보다가 길거리에서 부딪치는 두 사람의 상황을 한국 드라마 스타일로 표현한 유튜브 Short 영상을 봤다. 그저 길을 가다가 부딪치고 끝날 상황인데 한국 드라마에서는 극적인 표현을 위해 수 많은 컷으로 나눠서 그것도 아주 천천히 보여준다는 것을 패러디 한 것이다. 거기에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고는 뜬금없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 영상의 '킬포'였다.


사실 한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영상이지만 이런 스타일이 '한국 콘텐츠'의 특징으로 굳어지는 것을 나는 경계한다. 그런 것들이 '쪼'가 되어 쌓이면 결국 한국 콘텐츠 자체에 대한 '식상함'으로 느껴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유행으로 끝날거라던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사랑을 점차 얻어나가는 과정을 보며 팬으로서도 참 뿌듯하다. 앞으로도 글로벌 문화를 우리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세계 대중문화 속의 한국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세계인의 마음 속에 가까이 다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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