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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Nov 17. 2021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정치 드라마가 지상파를 벗어났을 때

우리나라 정치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안구건조증과 같은 뻑뻑함은 무엇때문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풍자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대 초반 장진 감독이 참여했던 SNL 한국판에서는 그런 뻑뻑한 정치를 풍자를 통해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보였었다. 그러나 여러 윗분들의 사정으로 점차 성적 풍자로만 꽉찬 반쪽짜리 SNL이 되어 아쉬웠다.(이번 SNL 신규 시즌도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풍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가볍게 침을 한번 뱉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마음에 여유를 내어 허공에 대고 욕이라도 한번 하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린다. 풍자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뻑뻑한 현실로 인한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고 마음에 여유를 준다. 그런데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으면 사회가 뻑뻑해지고 각박해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로 정치를 가지고 노는 풍자는 대중문화의 공적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최근 우리 대중문화는 정치 풍자를 어색해 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광대들이 임금님 욕을 하던 조선시대가 더 나았던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정권을 비판했다고 해서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세상이었다 보니 그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대중문화가 주로 소비되던 공중파에서는 여러 이유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려다 보니 정치를 온전히 가지고 놀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치 드라마이다. 미국에서는 웨스트윙, 하우스오브카드와 같이 정치의 빛과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SNL에서는 정치인들이 희화화되기도 한다. SNL에서 대통령이 우스꽝스럽게 나온다고 해서 국가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연출진이나 출연자들의 뒷조사를 하거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지는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사정으로 정치 풍자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반쪽짜리 컨텐츠들이 계속해서 양산되어 왔다. 공중파에서는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 드라마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정치를 소재로 한 로맨스 드라마이거나, 정치를 소재로 한 성인판 하이틴 성장 드라마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정치를 온전히 가져다 쓰지 못하니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정치 드라마를 표방해도 거기에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고 그 빈자리를 로맨스나 비현실적인 빌런과 같은 소재로 채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 대한 기대도가 점점 낮아져왔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조금 많이 다르다. 정치 드라마가 공중파를 벗어나니 과감한 표현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현실 소재를 매우 과감하게 가져왔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청와대, 장관, 장관 남편, 야당 국회의원, 종교인, 기자 모두 기시감이 매우 많이 느껴진다.(등장 인물들이 어디서 많이 본 인물들인 것은 기분 탓일거다. 장관 남편은 특히..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다.) 실존 인물명이 그대로 표현되는 부분에서는 '이게 한국 정치 드라마에서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풍자가 매우 뛰어나다. 정치권의 이면, 언론의 왜곡 보도, 극우화된 종교 집단 등을 거침없이 풍자한다. 거기에 스토리의 완성도도 칭찬하고 싶다. 장관 남편의 실종이라는 메인 스토리와 정치 풍자가 아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비현실적인 스토리가 현실적 요소와 거침없이 만나 개연성을 완성했다. 거기에 그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결말은 덤이다.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주인공인 이정은은 체수처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부하 직원을 보호할만큼 정의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한 자기모순적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 야심 또한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마치 웨스트윙에서 정의롭지만 정치적 이익을 위한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바틀렛 대통령을 생각나게 한다. 마냥 주인공이 정의롭기만 했던 기존 한국 정치 드라마의 인물 서사와는 실히 다른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우리 사회가 정치를 제대로 풍자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원래 풍자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아주 지난 과거인 90년대에는 풍자 코미디가 전성기였던 때도 있었다. 지난 10년간 그것이 어려웠을 뿐이다.(풍자 코미디를 생각할 때마다 김형곤 코미디언이 그리워진다.)


이번에 제대로 된 정치 드라마가 나왔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책상에 있던 쿨향 안약을 눈에 한 방울씩 넣었더니 눈이 시원하다. 그리고 이정은이 앞으로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 청와대까지 갈지, 청와대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드라마가 계속 될 수 있도록 윗분들의 사정에 문제가 없어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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