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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Dec 17. 2021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서

정상훈,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그는 죽기 위해 현장으로 갔던 것 같다. 이유 없이 찾아온 우울증 앞에서 그는 의사로서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결국 죽고 싶다는 생각 앞에 서게 되었다. 죽음이 일상인 현장으로 찾아간 이유는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 죽지는 못하지만 죽을 병에 걸려 죽으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위안할 수 있을테니까.


저자는 죽음이 일상이었던 현장에서 ‘갈라진 세계’를 보았고 ‘침묵의 벽’을 목격했다. 또한 본인의 마음속에 있던 ‘갈라진 세계’와 ‘침묵의 벽’을 발견하게 되었다. 죽음은 거울이 되어 저자 본인을 비춰 바라보게 했고, 삶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그는 결국 죽음 앞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현장이 사실은 삶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있는 현장이었으며, 자신은 죽음으로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죽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에서 스쳐지나간 수 많은 사람들과 죽음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마음 속 갈라졌던 세계는 죽음을 통해 다시 서로 손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죽음의 현장 속에서 생명을 얻었고, 운명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나 또한 인생의 고민이 너무 켜져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거의 한달간 불면증에 시달리고 공황증세가 찾아왔다. 몸무게가 10키로 넘게 빠져버렸다. 조금 몸을 추스리고 있던 와중 대학 선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발인일, 어쩌다 나는 운구까지 하게 되었다.


장례식장에 고요히 놓여있던 검은 관을 바라보았다. 나는 선배의 졸업식날 사진을 찍어줬고, 선배의 아버님께서는 학생으로는 사먹기 힘들었던 비싼 갈비를 사주셨었다. 그렇게 뵌지 얼마 되지 않아 선배의 아버님은 담관암 판정을 받고 손 쓸 도리도 없이 한 달만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마지막을 서로 준비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던 황망한 죽음이었다.


선배들과 함께 관을 들었다. 순간 삶과 죽음이 이 얇은 나무판 경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죽음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얇은 나무판을 경계로 산자와 죽은자가 갈렸던 것이다. 삶과 죽음에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 그 순간 내가 괴롭게 품고 있었던 삶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이렇게 나에게 거울이 되어 삶을 돌아보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고민이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 답을 찾지 못해 그 고민이 너무 커질 때는 가끔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그 때 내가 들었던 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오늘 저녁 퇴근 후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 오늘 잡아놓은 좋아하는 형과 함께 하는 운동 약속을 생각하려 한다.


“삶에 대한 판단, 즉 삶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것이 삶을 긍정하는 것이든 부정하는 것이든 궁극적으로는 결코 참일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증후(현상)로서만 가치를 지닐 뿐이며 증후(현상)로서만 고려될 수 있다. 그러한 판단들은 그 자체로는 우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들 삶의 가치는 평가될 수 없다는 이 놀랍고 미묘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 니체, 초인수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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