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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Nov 11. 2021

나곤대의 OKR은 왜 실패했을까

이길상, OKR로 빠르게 성장하기

<A제약의 OKR은 어떻게 도입되고 어떻게 망하는가>


* 독서 후 OKR의 여러 개념들을 녹여 작성한 가상의 글입니다.


서울에 소재한 A제약은 나름 안정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인사 평가 제도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팀장이 100점 만점으로 상대 평가를 해왔다. 당연히 제도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특히 회장인 나곤대는 직원을 평가하는 관리자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 평가 방식을 바꾸고 싶어했다.


어느날 골프장에서 만난 B제약 우회장은 나곤대에게 OKR을 추천했다. 구글에서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방식이라며 이제 평가도 객관적인 지표로 해야 한다고 자랑을 하면서. 자기네 회사도 최근 컨설팅 업체의 도움으로 OKR을 도입했는데 효과가 좋았다면서 업체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구글에서 만든 방식이라는 것에서 혹한 나곤대는 다음 날 기획실장을 불러 컨설팅 업체 대표 전화번호를 넘기며 OKR 도입을 지시했다.


기획실장은 OKR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표가 지시를 했으니 진행을 해야 했다. 인사팀장 하부장을 불러 OKR이라는 걸 도입해야 하니 TF팀장을 맡으라고 지시했다. 하부장이 컨설팅 업체 대표를 만나 OKR에 대해 들어보니 이건 TF팀만 움직여서 될 일이 아니고 전사적으로 미션, 목표, 핵심결과를 함께 수립해야 하는 일이었다. 특히 오너부터 직원까지 함께 소통하며 함께 지향할 수 있는 목표를 수립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거기에 OKR을 수립한 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고 리더들의 지속적인 피드백과 코칭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전사적인 변화가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A제약의 기업문화는 그런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꼰대가 많은 조직인데다가 회장도 꼰대중 꼰대인데 회장에게 미션에 대해 전사적인 대화를 나눠보자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대화를 하자고 나와서는 라떼 이야기만 잔뜩 하고 들어갈 것이 뻔했다. 직원들도 목표의식 없이 그저 하던 일을 하던대로 계속 하던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부장이 나서서 OKR을 도입하기 위해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그러다가는 여기저기에 찍힐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고민이 된 하부장은 재무팀장으로 있는 친한 최부장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최부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하던 거나 잘하면 되지. 괜히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눈에 띄어서 미움사지 말고.'


결국 하부장은 적당히 OKR을 수립했다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곤대는 한번 문서로 보고만 하면 그 다음에는 기억도 못하실 분이라는 걸 하부장은 잘 알고 있었다. 인사평가 담당인 성과장을 불러 OKR 도입을 지시했고 성과장은 아무 생각없이 컨설팅 업체에서 제공한 OKR 매뉴얼과 함께 팀, 개인별 목표와 핵심결과를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메일을 전 부서 팀장들에게 보냈다. 다들 알아서 매뉴얼 읽고 제출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본인에게 남은 일은 그저 제출 일자만 맞춰 취합하고 정리해 보고하는 것이었다.


메일을 읽은 영업팀 마부장은 OKR이 참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팀원과 소통을 통해 영혼을 불어넣어야겠다 마음먹고 일하던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그러고는 늘상 하던대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은 1시간이 넘어갔고 직원들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일장 연설이 끝나고 나서 마부장은 말했다. '혹시 자기 의견 이야기 할 사람?' 당연히 의견을 이야기 할 직람은 없었다. 직원들은 흩어졌고 마부장은 뿌듯해했다. 그러고는 '참고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붙여 영업팀 선임인 김과장에게 메일을 포워드 했다. 김과장은 똑똑하니 목표와 핵심결과 작성은 잘하겠지란 생각과 함께.(참고로 '참고 바랍니다'라는 말은 정말 참고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사실 이걸 잘 모르는데 하긴 해야 하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는 명령이었다.)


제대로 된 평가제도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김과장은 갑작스러운 OKR 작성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목표와 핵심결과를 제출하라니 망망대해에 던져진 채로 뭐라도 잡아오라는 느낌이었다. 김과장은 그럴 때는 원래 하던대로, 관성대로 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늘 마부장이 벌리고 다니는 일을 잘 수습해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김과장이었다. 이번에도 잘 수습만 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김과장은 후배 직원들에게 그냥 팀 목표는 본인이 알아서 작성할테니 각자 하던 일을 적당히 지표화해서 제출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팀원들도 OKR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각자 하던 일을 적당히 문서화해서 제출했다. 그렇게 껍데기만 OKR인 성과체계가 완성되어 갔다.


몇 주 후 보고를 받은 나곤대는 OKR 도입이 100프로 완료되었다는 것을 문서를 보며 흡족해했다. 홍보팀에 OKR수립을 기념하는 행사와 외부 홍보를 지시했고, 모든 직원이 강당에 모여 팀과 개인의 OKR이 적힌 이쁜 패널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행사를 치뤘다. 그렇게 있어보이는 사진을 담은 기사가 언론에 배포되었다. 첫 해에는 핵심 결과를 달성한 것 처럼 보이는 몇 개 부서가 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핵심 결과를 달성했다는 것은 핵심 결과를 달성한 것 처럼 문서 작업을 잘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일 잘한다고 평가받는 김과장이 있는 영업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감받지 못한 그 제도가 지속적으로 운영될리가 만무했다. 몇 년이 지나 그 제도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곤대마저도 OKR은 우리 회사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전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했다. 결국 A제약은 여전히 기존의 인사 평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성공하는 OKR이 되기 위해서는>


'OKR로 빠르게 성장하기'는 OKR의 개념부터 OKR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을 다루면서 OKR이 성공하기 위한 요인들을 설명해주는 OKR의 기본서와 같은 책이다. 말로만 듣던 OKR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OKR이 성공하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한지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이 책을 천천히 읽다보면 쉽게 OKR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


OKR은 전사적인 소통을 통해 성장을 위한 목표와 목표 달성도를 확인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결과를 수립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도록 돕는 방법론이자 도구이다.


OKR은 평가를 위한 도구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OKR은 평가보다 성장을 위한 도구이며, OKR을 처음 도입한 구글에서도 별도의 평가방식을 운영하고 있고 OKR을 일부 반영하는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구글의 평가 방식은, 1년에 2회로 프리뷰(상반기) 컴플릿 리뷰(하반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반기에 진행하는 컴플릿 리뷰는 자기평가(구글의 인재상 5점 척도, 업적 및 기여), 동료평가(360도 평가), 조정(관리자들의 평가 리뷰), 확정(피드백 제공 및 보상, 승진)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여기에 OKR은 일부만 반영되는 방식으로 보인다.


성공적인 OKR을 위한 핵심은 소통이다. OKR 수립, CFR 등 OKR의 모든 과정은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각자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위임도 필수적이다. 결국 성공적인 OKR을 통해 조직과 개인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리더의 의지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과 존중의 조직문화를 이끄는 리더와, 구성원의 성장욕구가 만날 때 OKR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OKR에 대해 충실히 담고 있는 책이지만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다. OKR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결국 보상으로 돌아와야 할텐데, 보상에 대한 부분에서 OKR을 통한 평가와 보상/승진이 분리되어 있다는 부분에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개정판이 나온다면 실제로 OKR을 도입한 기업에서 개인의 보상과 승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기에서 OKR은 얼마나 반영이 되는지에 대한 예시들이 조금 더 기술되면 좋겠다.


만약 나곤대 회장님이 OKR을 도입하기 전에 이 책을 일독하셨다면 A제약의 OKR은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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