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토 '이야기의 탄생'
“이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이다. 우선 발화점에서 이 질문이 떠오른다. 첫 번째 변화가 발생할 때 주인공은 과잉 반응을 보이거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세를 바로 하고 새삼 집중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다 주인공이 플롯에서 난관에 봉착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이 질문이 다시 나온다.”
“이야기는 결국 결함 있는 자아가 치유의 기회를 얻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행복한 결말인지 아닌지는 인물이 그 기회를 받아들일지 말지에 달려 있다.”
“어떻게 행동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며, 어떻게 지위를 얻을지에 관한 집단의 이야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룬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런 원시적인 인식이 있다. 우리는 부족의 이야기로 사고한다. 이것이 우리의 원죄다. 우리 부족의 지위가 다른 부족에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마다 이런 고약한 신경망이 발화하고, 그 순간 우리는 잠재의식 차원에서 다시 선사시대의 숲이나 초원으로 돌아가며 스토리텔링 뇌는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반대편 집단에는 오로지 이기적인 동기만 부여한다. 독기 품은 변호사가 되어 상대의 가장 센 주장만 듣고 상대가 하려는 말을 곡해하거나 생략한다. 상대의 가장 수준 낮은 구성원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빌미로 그들 모두를 붓으로 뭉개듯 동일시해버리고 일개 개인만 보고 다른 모두의 깊이와 다양성은 지워버린다. 한 개인을 형체만 그려둔 다음 부족을 그런 형체의 무리로 만든다. 자기 부족 안에서 아낌없이 나눠주던 공감과 인류애와 인내심 있는 이해를 이런 형체에는 나눠주지 않는다. 그사이 우리는 마치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도덕적인 주인공이 된 것처럼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유혹적인 이유는 우리의 영웅 만들기 뇌가 우리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원시 부족적인 충동을 정당화시키고 우리가 혐오감에 사로잡힐 때도 우리 자신이 신성하다고 믿게 만든다.”
“우리는 통제력을 잃으면 적극적이고 영웅적인 인물이라는 자아 감각을 잃고 결국 불안하고 우울하고 심각한 상태로 치닫는다. 뇌는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 영웅적인 우리 자신에 관한 설득력 있고 교묘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야기는 부족의 선전 매체이자 부족에서 내세우는 프로파간다에 대한 치유책이다. (...) 이야기는 이렇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인간에게 자연스럽고 유혹적인 집단 혐오에 대한 치유책으로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가 얼마나 틀렸는지 우리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데 있다. 우리의 신경모형에서 취약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그 부분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인데,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감성적이고 방어적일 때는 대개 우리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부분을 넘겨주는 때이다. 이 지점에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가장 왜곡되고 예민해진다. 이런 결함을 마주하고 고쳐나가는 일은 평생의 싸움이 된다. 이야기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이기는 것이 영웅이 되는 길이다.”
"나보코프는 독자들이 처음 일곱 페이지를 읽고 정화의 불 속으로 책을 집어 던지지 않도록 아주 긴 지면을 할애해서 무의식중에 우리의 부족적 정서를 조작해야 했다. 그는 어느 학자의 학술적인 글을 서문 형식으로 끼워 넣어서 본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험버트가 죽었다고 밝힌다. 곧이어 그가 죽기 전에는 법적으로 구금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알린다. 이 서문은 독자가 도덕적으로 분개하기 전에 김을 뺀다. (..) 주인공이 무슨 짓을 저질렀든 그는 이미 부족 차원에서 응분의 벌을 받은 것이다. 이제 독자는 마음을 놓을 수 있으며 험버트를 벌하고 싶은 갈망은 가라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