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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Mar 08. 2022

회사를 10년 다녀보니(4)

극적질문 앞에 서다.

회사 3급 승진 재수에 실패했다.


우리 회사는 3급 승진을 위해서 필기시험과 논술을 1차로 보고 2차로 면접을 봐야 한다. 지난번에는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고 이번에는 아예 1차에서 떨어졌다. 


우리 회사는 3급 승진이 직장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3급으로 승진을 해야 받는 연봉이 4급으로 올라갔을 때 보다 훨씬 달라진다. 제일 중요한 건 보직을 달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3급이 되느냐에 따라 직장 생활 커리어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이번에는 나보다 후배들도 함께 경쟁을 하게 되어 나름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다만 요령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핵심 부서에서 일해보진 못했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은 다했다.(사실 핵심부서에 가지 못한 것도 나의 잘못은 아니다.) 부족한 것들은 채우고 잘못된 것들은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내가 이 자리를 누군가에게 인수인계 할때 훨씬 일이 수월해지고 문제들이 많이 해결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을 주도적으로 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했다. 그러나 필기시험과 논술을 잘 보지 못하면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최근 읽었던 존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스토리에서의 주인공은 모두 자신을 지배하는 고집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책에선 이것을 '통제 이론'이라 부른다. 모든 주인공들의 통제 이론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플롯이 전개되면서 주인공의 통제이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다시 자신의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정의하고 선택해야 한다. 결국 주인공은 플롯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스토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노력하면 안되는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게 내 인생을 지배해온 '통제 이론'이었다. 그 이론에 균열이 나버린 지금 내 스스로가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걸 느낀다. 동기, 후배들이 승진을 하고 나를 앞질러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인간인지라 착잡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내가 노력하면 인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만의 통제된 세상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이 직장에서 벌써 9년차가 되었다. 나에게 있는 것은 특정 영역의 전문성보다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공감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계속 배우고자 하는 열정뿐이다. 이제 직장이라는 무대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극적 질문 앞에 섰다. 앞으로 이 직장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내 앞길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 시험을 계속 봐야 할지, 아니라면 다른 길은 있는 건지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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