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다른 예술가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이와 같은 문제들에서 자유 할 수 있었던 걸까?
어떤 것들을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걸까? 나는 모든 것이 흐릿하고 모호한데, 저들이 가진 어떤 무언가가 망설임 없이 저렇게 자신을 비출 때 대담하고 명확할 수 있는 걸까? 그 어떤 무엇으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된 것일까?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끌어당기는 힘의 원리는 무엇일까? 각 사람마다의 예술의 원천이 궁금했다.
내가 베를린에서 다양한 예술을 누리면서 느낀 점은,
첫째, '돈 많은 금수저만 있는 게 아니구나'
유럽이라는 나라, 국가가 가진 문화예술의 풍요로운 역사,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들을 모이게 하는 힘
그것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부럽다기보다 아예 다른 지점을 받아들이게 됐다. 같은 것을 구현해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무조건 지는 싸움이기에 내가 그것을 그들보다 잘하겠다는 건 곡예와도 같은 일이었다.
이런 각성은, 요즘 말로 '현타 온다'라고 하는데 내가 버클리에 다닐 때 하버드나 MIT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물론 1차적으로 버클리 안에서 먼저 느꼈다.
애초에 '경쟁'이라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그때도 깨달았지만 지금 또 깨닫고, 아마 계속 또 깨달을 것 같다.
둘째, 예술은 테크닉보다 철학이 중요하구나
:예술은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슬픈 존재인 나는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버클리에서는 아무래도 학부과정이기 때문에 인문학이나 철학, 사회학보다는 음악에 대한 고도의 테크닉에 주로 집중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도록 벅찼다.
종종 '음악 하는 사람이 왜 박사를 굳이 하느냐', 혹은 '버클리 졸업하고 한국에서 뭐하러 또 학교를 다니느냐'라는 질문이나 핀잔 같은 걸 들을 때가 있다.
대게 음악을 하면서 음악으로 먹고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거의 모든 뮤지션이 음악으로 돈을 벌어 음악만 평생 하면서 살다가 죽는 게 소원일 거다.
생각보다 우리의 소원은 소박하지만 그 소원은 통일의 소원만큼이나 희미하고 저 멀리에 있다.
사람들의 핀잔 속에는 음악으로 먹고살기 힘든 불안정한 프리랜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교수에 대한 염두를 의식한 발언이 숨어있을 때가 있다. 우리 모두가 씁쓸한 현실이다.
물론 나도 불안정한 삶을 전혀 즐기지 않고, 바로 한 해 전까지도 꾸준히 학교를 출강했고, 적성에도 맞는, 가르치는 일을 염두한, 계획적이고 어른스러운 선택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내가 버클리를 갔던 이유도, 지금 박사를 하고 있는 이유도 솔직히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나 목적은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최소한의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였을 뿐이다.
그 의지 하나로 나는 엄청난 것들을 경험했고 충분히,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성장했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도와 태도'라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한다.
정직한 의도는 대게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렇게 지금 나의 박사 생활은 별 특별한 능력치를 얻었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 때문에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는 것이다.
마치, 베를린에서 경험한 예술가들의 좋은 작품 속에서 느껴졌던 기운이 지금의 철학과 미학, 인문학과 사회학 등으로 설명되는 것 같았다.
예술은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고, 우리는 어디에서나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셋째,
‘아티스트’라고 보이는 그들의 삶의 절반은 어떤 의도나 목적 같은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절반은 치열한 싸움이나 처절한 고뇌가 느껴졌다. 뭔가를 알고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본인조차 모른 채 흘러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 자체가 예술이라면 예술이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결론은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적잖은 도움과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내가 가진 본질적인 갈증을 해소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정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 뿐이었다.
고민을 하는 것도 나요,
그 지루한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야만 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내가 찾고자 했던 그것이 무엇인지 용감하게 마주해야 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인 것이다.
그 과정을 온전히 혼자서 겪어냈을 때만 할 수 있는 성장이 있다.
맨 땅에서 꽃이 피듯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그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혼자서 꼭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위해서
그래서 그런 건지, 어렸을 때는 기억에 남는 특별한 추억의 대부분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나'였는데 어느샌가 달라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부터의 내 기억은 혼자서 꿋꿋이 버티면서 지나온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기억이 괴로웠던, 외로웠건 간에 그 시절을 지나면서 나의 변화되는 모습들, 그리고 그 시절의 그 감정들이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것들이 지금의 특별한 나의 기억이자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