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를린에 와서야 바보같이 이렇게 할 말이 많았던 나와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생각도 고민도 많은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정작 나 자신을 위해 진짜 해야 하는 고민을 너무 많이 미뤄두고 살았던 것이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주식을 공부하고, 부동산을 공부하며, 재테크를 배우고, 지금 전 세계의 정세를 읽고, 모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노를 저으며 나의 포지셔닝을 해내는 것. 도 물론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사실 그 누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2020년에 ‘코로나 19’라는 질병이 전 세계에 퍼질 줄, 그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호기심과 두려움 같은 감정을 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우리의 삶에 있어 내가 나를 만나고 대화하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진실된 나 자신과 만나는 것.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와 합의하는 것
그 이후로 실패에 대한 나의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는 20대 때 그렇게 힘이 넘쳐나던 시절, 막상 운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내야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음악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미련하게도 30대, 그것도 후반이 되어서야 수영이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것을 걱정한 엄마는 항상 다른 건 몰라도 수영은 꼭 배우라고 말씀하셨었다.
유학을 끝내고 만신창이 상태로 한국에 돌아와서, 일을 하면서 또 만신창이가 됐다.
만신창이가 되는 방법은 다양했다.
‘이것보다 더한 어려움은 없겠지....’, ‘이 산만 넘으면 되겠지....’
아니, ‘그때가 좋았던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버클리를 다닐 때도 내가 상상했던 음악대학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예술대학이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한다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걸 전공하러 간 나 조차도 재밌게 배울 수 있을 줄 착각했다. 물론 너무 재밌지만, 딱 그만큼 힘들다. 즐기기 위해서는 꼭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
내가 한국에서 출강했던 학교 또한 내가 상상했던 학교의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그 다름의 결은 매우 차이가 있다.
버클리를 다닐 때 나의 기대와 달랐던 현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칠 만큼 치열했던 싸움 뒤 찾아오는 기쁨과 위로는 크게 없었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당분간, 다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가혹하리만치 혹사시킨 체력을 올리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가장 가까운 센터에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난 다니는 한 달 동안에도 절대 이 한 달을 채우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놀랍게도 나는 수영을 즐기게 되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헬스나 마라톤, 프리 다이빙 등을 경험했지만 지금까지도 ‘수영’이 단연 좋았다.
수영은 그렇게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수영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지만, 사실 내 몸 하나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처음에는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있다.
나는 나를 소유할 수도, 컨트롤할 수도 없다. 그저 살아갈 뿐.
그래서 매 순간이 기적이고, 값지다.
그저 살아갈 수 있는 이 모든 모먼트들이 놀랍다.
그동안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면서 젊음을 불살라 내가 얻고자 했던 것, 그토록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진정으로 내 삶을 사랑하고 그래서 행복하길 원한다면,
나의 내면의 평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단단함과 유연함, 그리고 관계성, 또 건강한 신체를 잘 돌보아야 한다.
그것들을 가지고, 힘 있게 내가 꿈꾸고자 하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추구하며, 값 없이 돌아올 자연의 축복과도 같은 그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깨닫고자 한다.
"지금부터라도 그것들을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필사적으로 지켜 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