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Jan 19. 2021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 그리고 역사의 빚

앤 마리 오코너 《우먼 인 골드》(영림카디널, 2015)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한 그해에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레이디 인 골드(The Lady in Gold). 여기서 레이디는 저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국민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그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속 주인공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입니다. 클림트의 뮤즈로 알려진 초상화 속 여인. 둘은 흔히 연인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그건 적어도 이 책에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확인할 길 없는 어떤 경로로 2015년 이후 줄곧 제 서가에 꽂혀 있던 이 책을 얼마 전 우연히 꺼내 펼쳤습니다. 이토록 뛰어난 논픽션을 왜 여태껏 읽지 않았던가.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은 국보급 회화에 얽힌 잔인한 역사를 유려하고도 치밀하게 탐색해 들어갑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의 찬란했던 영광, 들끓는 용광로처럼 문화와 예술과 학문이 번성했던 이 영화로운 도시가 나치의 점령으로 어떻게 타락해갔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한때 빈에 머물렀던 히틀러가 이 도시에서 전혀 환대받지 못한 뜨내기 미술학도였다는 사실로부터 나치 지도자가 돼 빈을 손아귀에 넣은 이후 나치에 의해 수많은 미술품이 약탈당하는 잔인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운명처럼 펼쳐지죠. 빈의 영광 안에는 혁신의 미술가 클림트가 있었고, 위대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었으며,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있었고, 그 밖에 내로라하는 그 시대의 거물들이 있었습니다.     


문득 2000년대 중반의 어느 해에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클림트라는 화가의 이름과 <키스>라는 작품이 대표작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지, 미술에는 완전히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절이었죠. 관광코스에 있기에, 빈을 대표하는 명소라기에 가본 것일 뿐, 클림트의 그림들은 당시의 제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클림트의 그림을 마주할 자세조차 돼 있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죠. 지금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치 점령 시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빈의 역사를 읽어가다 보니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의 식민지 시기와 해방 이후의 역사와 겹쳐지는 것들이 많은가 싶더군요. 그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아델레 초상화의 파란만장한 운명은 빈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넘어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웅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전체주의의 어긋난 야심 앞에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 역시 수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나치가 약탈한 그림이란 미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2006년 미국에 거주하는 아델레 일가에게 반환된 아델레 초상화는 그해 뉴욕의 노이어 갤러리를 운영하는 미국의 사업가 로널드 로더가 1억 3,500만 달러에 사들입니다. 회화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죠. 국내 언론들도 이 소식을 해외 토픽으로 다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김대건을 흠모하는 어느 사제의 진솔한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