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나는 씨앗입니다》(책밥상, 2020)
참 오랜만에 읽어보는 정갈한 문장들. 가식을 걷어내고 진심에 다가가는 마음 씀씀이. 김대건이란 이름만 알았을 뿐이지, 정작 김대건이 어떤 분인지는 몰랐던 제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기름기라고는 없는 이 맑고 고운 글을 읽는 동안 제 마음에 눌어붙은 세속의 때가 조금은 씻겨나가는 기분도 들었고요.
순교자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나약한 그의 본성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성인이 되고, 순교자가 되기도 훨씬 전에 대건은 슬픔에 잠긴 엄마를 걱정하는 조선의 평범한 아들이었다.
선인들의 체취가 더 진하게 느껴질수록, 그분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보다 인간미 넘치는 소소한 일상들에 더 마음이 간다.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에 작은 실수라도 하였으리라 상상하면 그게 반갑고 마음 놓인다. 그제야 그를 닮을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조급한 마음을 안도하게 한다. 순교자를 기억하는 조형물도 좋지만 버려진 듯 널브러진 돌멩이, 막 피어난 잡초에서도 옛 교우들과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는 건 틀림없는 축복이다.
그래서 저자가 한달음에 김대건 생가로 달려가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대건이 형! 뭐 하나 나랑 놀자!”하고 불렀다는 그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리는 일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니, 거창하지 않아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고 친근함이 느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들이 저를 다독여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는 올해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는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이 됐습니다. 자기가 나고 자란 땅에서 천주교 사제로 활동한 기간이 8개월에 불과했고, 스물여섯 짧은 생의 마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순교자 성인의 삶을 좇는 깨달음의 언어들로 충만한 책입니다. 천주교를 믿든 안 믿든, 하느님(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주는 감동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성 베네딕도는 자신의 제자 수도승들에게 ‘기도하고 일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수녀님들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기도이다. 그리고 일이다. 일이 기도의 다른 모양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좋은 비료와 약을 써서 더 많은 수확을 내고,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는 건 중요하지 않다. 꽃을 심고, 물을 주고, 풀을 매는 일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손톱보다 작은 허브 꽃을 조심스럽게 따고 씻고 펼쳐서 정성스레 말리는 게 목적이지, 그걸 좋은 값에 팔아 더 좋은 일에 쓰겠다는 선량한 계산조차 그들에겐 없다. 본전도 못 되는 농사이거나 반도 안 되는 수확에도 놀라고 감사한다. 그게 기도이고 수도생활이다. 그래서 수도자는 세상과 어울리는 게 아니라 세상을 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