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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03. 2021

보고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김홍도의 풍속화

<김홍도의 풍속도첩>(3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은 제게 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입니다. 월요일의 박물관은 한산합니다. 보통 박물관, 미술관은 월요일에 쉬지만, 국립박물관은 월요일에도 문을 열죠. 그걸 아직 잘 모르는 이들 덕분에 월요일 박물관은 비교적 덜 붐빕니다. 게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철저하게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관람객을 받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박물관 관람 환경은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코로나가 바꾼 것이 참 많군요.     


오랜만에 월요일에 여유가 생겨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 박물관 회원으로 가입하고, 관람 시간을 예약했습니다. 일단 상설관부터 돌아봅니다. 그동안 잘 있었지? 마음속으로 인사부터 건네면서요. 제 발길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2층 서화실로 향합니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죠. 역시 오가는 관람객은 뜸합니다. 이 조용한 공간이 마치 나만을 위한 것인 듯, 그림을 가까이서 또 멀리서 오래 들여다봅니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김홍도의 풍속화를 잘 아는 사람 또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홍도의 작품 세계를 깊이 연구한 전문가라면?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이 그토록 오래 연구하고 논문과 책을 써냈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볼 때마다 저는 늘 새로운 면을 발견합니다. 저는 물론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림의 화풍이 어떻고 점과 선과 색이 어떻고 하는 것을 미술사적 맥락에서 근사하게 설명해낼 재주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박물관 소장품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김홍도 풍속화를 고화질 이미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숨은 디테일까지 샅샅이 관찰할 수 있죠. 하지만 그림을 본다는 행위는 모니터에 구현되는 이미지를 관찰하는 행위와는 차원을 달리하죠. 어쭙잖게 미술 기자 생활을 하다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모름지기 그림 앞에 서야 한다는 겁니다. 발품을 팔아서 찾아가 만나야 합니다. 그 ‘만남’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죠.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2층 서화실 한쪽에 소담하게 마련된 전시공간에 김홍도의 풍속화 몇 점이 놓여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누워 있습니다. 그림이 외부 조명과 같은 자극에 손상되거나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은 어두운 공간에 다소곳이 누워 있죠. 세어보니 모두 6점입니다. <탁발승>, <타작>, <자리짜기>, <기와이기>, <빨래터>, 그리고 <서당>. 이 가운데 넉 점이 낱장으로 돼 있고, <타작>과 <자리짜기>가 한 화첩의 양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단원풍속도첩》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가 익히 알고 또 보아온 김홍도 풍속화는 모두 이 화첩에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이번 전시만 봐도 여섯 점 가운데 넉 점이 낱장, 그리고 두 점이 한 화첩의 펼침 면에 붙어 있습니다. 편의상 다 묶어서 《단원풍속도첩》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화첩에 들어 있는 그림이 11점이고 나머지 14점은 낱장으로 돼 있습니다.     


한 화첩 안에 묶여 있던 그림을 낱장으로 떼어내는 까닭은 십중팔구 팔기 위해서입니다. 화첩을 통째로 팔기보다는 한 점, 한 점씩 분리하면 판매도 쉬운 데다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죠. 그래서 옛 그림을 보다 보면 화첩을 분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풍 그림도 조각조각 분리해서 판 경우를 꽤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보관하기 위해서, 또는 여러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등등. 《단원풍속도첩》이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부는 화첩으로 일부는 낱장으로 전한다는 사실을 저는 이번에 알았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에는 각각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중심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는 것이 김홍도 그림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예컨대, <서당>의 주인공은 가운데 앉아 울고 있는 소년입니다. 슬픔, 눈물 따위를 그리지 않은 우리 회화의 전통에서 ‘우는 얼굴’을 그린 희귀한 작품이죠. 하지만 저 눈물이 ‘슬픔’이나 ‘비탄’ 같은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죠. 왜냐하면 저 우는 소년과, 그게 안쓰러운 훈장님을 뺀 나머지 인물들은 다 웃고 있으니까요.     



<빨래터>의 주인공은 저 뒤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빨래하는 아낙들을 몰래 훔쳐보는 남정네, <기와이기>의 주인공은 지붕 위에서 수키와 한 장을 공중에 띄운 채 곡예를 부리듯 하는 장인, <자리짜기>의 주인공은 일하는 부부가 아니라 하의 실종된 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코흘리개 소년, <타작>의 주인공은 아주 거만한 자세로 일꾼들을 감시하는 양반네…. 자세도 표정도 어쩌면 저렇게 생생한지요.   

   

게다가 김홍도의 풍속화는 어떤 청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죠. 김홍도의 풍속화에 담긴 생생한 현장감 덕분입니다. 마치 움직이는 영상을 일시 정지해놓은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며 동작이 여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건, 다시 말하면 김홍도라는 화가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일 겁니다. 눈도 좋고, 손도 좋은 화가.     


  


관람객들의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덕분에 요즘은 대형 스크린을 이용해 그림을 이렇게 저렇게 뜯어볼 수 있도록 해놓은 공간이 참 많아졌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겨우 여섯 점만 전시해놓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죠. 또 다른 작품들은 나중에 또 볼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게다가 대형 화면을 통해 그림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으로 위안도 삼을 수 있고요. 이런 국보급 그림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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