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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10. 2021

병자호란 때 절개 지킨 오달제의 그림 ‘눈 속의 매화’

오달제 <묵매도(墨梅圖)>, 조선 17세기, 비단에 먹, 108.8×52.9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2층 서화실에서 우연히 만난 그림 한 점. 눈 속에서도 매화는 꿋꿋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설중매(雪中梅)라고 하죠. 시련 속에서도 절개와 지조를 잃지 않는 고고한 정신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오달제(吳達濟, 1609~1637). 맞습니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청나라와 화친을 반대해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회유와 협박을 거부하며 지조를 지킨 인물. 그 때문에 끝내 함께 잡혀간 윤집, 홍익한과 함께 처형을 당합니다. 당시 오달제의 나이 스물아홉. 세상은 이들의 절조를 기려 삼학사(三學士)라 불렀습니다. 그린 이의 숭고한 뜻을 알고 나면 더 깊은 감동을 얻게 됩니다.     


     


족자 형태로 꾸며진 그림의 뒷면에는 오달제의 11대손 오중환이 조상의 절개를 사모하며 적어 내려간 글이 적혀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현자와 불초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이것(매화)을 사랑한다하지만 나의 11대조 충렬공(忠烈公오달제의 시호)께서 설매(雪梅)를 사랑하신 것은 눈의 결백과 매화의 청정한 절개를 취하신 것이다순절하실 당시 아저들 호랑이와 여우 같은 마음이 매우 가혹하여 기름 달군 솥에 몸을 삶고 철형(鐵荊)에 발을 딛게 하고 칼로 살을 도려내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끝내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셨으니 아애통하다어찌 장렬하지 않은가공께서 평소에 그리셨던 눈 속의 매화 그림은 일상의 유희에서 나온 것이지만결백하고 청정한 평소의 절의를 나타내신 것이기도 하다불초 후손이 이것을 보고 감격해 눈물을 흘리고 사모하며천박한 식견도 생각하지 않고 감히 몇 마디를 적는다.     


비단 이 글을 적은 오중환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집안의 보물이자 해주 오씨 가문의 자랑이었겠죠. 이 그림은 1972년에 해주 오씨 종친회의 오기환 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국가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오달제의 할아버지인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瑣尾錄)》

 

제가 특별히 이 그림에 주목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쇄미록(瑣尾錄)》이란 일기 때문이죠. 장장 9년 3개월에 걸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일기를 쓴 이가 바로 오달제의 할아버지인 오희문(吳希文, 1539~1613)입니다. 오희문 자신은 과거 급제나 벼슬과는 인연이 멀었지만, 손자인 오달제는 훗날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서 일했고, 병자호란 때는 끝까지 화친을 반대해 죽음을 맞음으로써 후대에 길이 남을 충신으로 이름을 남기죠.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나면 그림을 보는 마음가짐도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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