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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15. 2021

서울을 그린 거의 모든 옛 그림의 역사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서울》(혜화1117, 2020)


《이중섭 평전》을 쓴 미술사학자 최열 선생이 지난해 펴낸 책입니다. 일단 몇 가지에 놀랐습니다.     


첫째, 서울을 그린 거의 모든 조선 시대 그림을 망라했습니다. 한동안 인왕산 그림을 찾아 헤매던 제게 이 책은 바이블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가령, 인왕산을 그린 가장 오래된 그림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이 책이 답을 알려줍니다. 물론 그것이 정답이라곤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그림 가운데 인왕산이 보이는 가장 오래된 그림이 뭔지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왕산 못지않게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소재 중 하나는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정궁이었지만, 실제로 정궁 역할을 한 기간은 얼마나 안 되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이후 어느 임금도 감히 경복궁 재건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영조, 정조 시기에도 그러했습니다. 고종 때가 돼서야 그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대대적인 경복궁 중건을 이뤘으나,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로 경복궁은 말 그대로 누더기가 돼버립니다.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은 조선의 화가 그 누구도 경복궁을 주인공으로 세운 그림을 남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기 전 번듯한 위용을 자랑하는 경복궁을 담은 그림이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에는 경복궁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들이 여러 점 소개돼 있습니다. 뚜렷한 관심사를 가지고 옛 그림을 보면 역사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듯 흥미진진하답니다.     


둘째, 겸재 정선이 얼마나 대단한 화가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조선 시대 한양의 모습은 겸재를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니, 겸재의 그림을 빼면 한양을 소재로 한 옛 그림의 역사가 대단히 빈약해지고 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겁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구석구석 그리도 많이 그려 남긴 화가는 겸재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겸재의 그림만 자그마치 41점입니다. 왜 겸재, 겸재, 하는지 알 수 있죠.     

그 밖에도 흥미로운 그림들을 꽤 많이 만났습니다. 서울 풍경을 담은 옛 그림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두고두고 참고하면 좋을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책입니다. 곳곳에서 저자만의 뚜렷한 주장과 생각도 엿볼 수 있죠. 그럴 때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 읽는 기쁨이 더 커집니다. 코드가 맞는 저자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미술 공부는 늘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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