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Mar 06. 2021

프랑켄슈타인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는 괴물?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지학사아르볼, 2020)


명실공히 이제는 SF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작품입니다. 일단 몇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닙니다.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이죠.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저주받은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또 하나, 소설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를 먼저 접한 이들은 영화의 줄거리가 실은 소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잘 모릅니다.     


소설을 열고닫는 화자는 로버트 월튼이라는 야심만만한 모험가입니다. 월튼은 선원들을 모집해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죠. 소설은 월튼이 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빅터 프랑켄슈타인이고요.     


호기심 많은 프랑켄슈타인은 새 피조물을 만들어내겠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금단의 영역을 넘어버립니다. 하지만 막상 괴물이 살아 꿈틀거리자 극도의 혐오와 공포에 빠지고 맙니다. 단 한 순간도 성공했다는 기쁨이나 환희 따위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프랑켄슈타인은 실험실을 박차고 뛰쳐나갔고, 그 뒤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다시 만나게 되죠.     


괴물의 창조가 막내 동생의 살해와 살인자로 몰린 가족의 죽음이라는 첫 번째 비극을 낳았다면, 연구실을 뛰쳐나간 뒤로 처음으로 다시 만난 창조자에게 괴물은 짝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여자를 만들어달라! 그럼 더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멀리 떠나서 숨어 살겠다! 프랑켄슈타인이 이 요구를 마지막 순간에 거부한 것이 두 번째 비극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살해되고, 거기에 충격받은 아버지가 쓰러져 세상을 떠납니다.   

  

남은 것은 복수뿐. 창조자는 자신이 만든 괴물을 응징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추격하는 모험을 떠납니다.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의 감정을 익힐수록 점점 더 인간다워지는 괴물은 그러나 소름끼치도록 추악한 겉모습으로 인해 끝내 자신을 만든 창조자는 물론 창조자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죠. 고독에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묻고 또 묻죠.     


“나는 혼자였다. 아담이 창조주에게 애원했던 게 떠올랐다. 하지만 내 창조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나를 저버렸고, 나는 쓰라린 심정으로 그를 저주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적대 관계라는 설정이 이후 등장하게 될 SF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영화 <블레이드러너>로 우리에게 친숙한 필립 K. 딕의 원작 《앤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김보영 등이 쓴 SF의 바이블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의 처음을 장식하는 작가는 바로 메리 셸리. 김보영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메리 셸리는 괴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이전글 분노에 몸서리치다 끝내는 슬픔에 잠기게 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