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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15. 2021

옛것과 새것을 아우르는 공부

조정육 《시절인연 시절그림》(아트북스, 2020)

    


옛 그림을 공부한 이는 요즘 그림을 모르고, 동양의 그림을 공부하는 이는 서양의 그림을 모릅니다. 당연하죠. 그 당연함을 넘어야 좋은 저자, 좋은 연구자가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옛것과 새것을 아우르는 공부가 없다는 것, 제가 우리 저자들의 미술책을 접하면서 늘 안타깝게 생각해온 점입니다.     


이 책은 참 오랜만에 그런 미덕을 보여줍니다. 물론 어떤 대목은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적잖이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옛 그림과 오늘의 그림을 함께 봤을 뿐 아니라, 그 둘을 꽤 부드럽게 이어갈 줄 아는 것은 저자의 공부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쩔 수 없이 미술 에세이라는 형식의 대세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릇에 어떤 내용을 담는가 하는 것이겠죠. 우리나라 미술책 저자들이 이런 작업을 보여주길 저는 감히 기대합니다.     


심사정, <송하음다>, 종이에 연한색, 28×38.5cm, 18세기, 개인 소장


차 마시는 장면을 담은 현재 심사정의 그림입니다. 조선 시대 내내 차 마시는 그림이 제법 많이 그려졌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 그림이야말로 찻잔을 입에 대고 마시는 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기억해둘 만한 그림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금강산을 그린 현대 작가가 제법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됐습니다. 그중 어떤 화가는 ‘금강산 화가’로도 불리는 모양인데, 이런 화가들은 실제로 대중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금강산 관광길이 막혀버린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죠. 아마 손이 근질거리는 화가들이 꽤 많을 겁니다. 수많은 화가가 금강산을 그렸지만, 금강산은 마르지 않는 그림의 소재임이 분명합니다. 언젠가 금강산이 다시 열리면 어느 누가 ‘금강산 화가’로 불릴지 자못 궁금합니다.     


임종로 <수월관음도>, 스테인드글라스, 180×200cm, 광주 무각사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광주 무각사 대웅전 지하에 있다는 임종로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수월관음도>입니다. 이 작품이 주는 특별한 감동은 마치 길상사에 있는, 보살상인지 성모마리아인지 모를 신비로운 관음보살상의 그것과도 같더군요. 저자의 말대로 아름다움의 세계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면 그뿐이죠. 무각사 주지 스님의 혜안입니다. 심지어 이 절의 설법전에는 황영성 작가의 서양화 <반야심경>도 걸려 있다고 합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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