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Mar 15. 2021

이순신 장군이 생각나면 김훈의 글을 읽는다

김훈 《연필로 쓰기》(문학동네, 2019)


이따금 이순신 장군을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김훈의 글을 떠올립니다. 작가가 연필로 눌러 쓴 <내 마음의 이순신> 두 편을 다시 읽습니다. 김훈이 아니면 안 되는 글이죠. 다시, 김훈이기에 쓸 수 있는 글입니다. 기름기를 죄다 걷어낸 서늘한 문장으로 작가는 이순신에 관해 썼습니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힘. 작가는 그것이 바로 이순신의 용기라 했습니다.     


그의 가난, 그의 정직성, 그의 사실성에 나는 눈물겨웠는데,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작가조차 이순신의 생애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실’론은 작가 김훈이 보는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을 이룹니다.  

   

“‘사실에 정서를 이입시키지 않고 사실을 오직 사실’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그의 리더십에 한 중요한 본질을 이루는 듯하다.”     


<난중일기>로 흔히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압니다. 이순신 장군이 일기에 적은 사실들이 주는 서늘함을. 사실들의 연속에서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는 장군의 마음자리를.    

 

이순신은 사실을 기록했을 뿐 첨삭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가 받아들이고 긍정했던 사실들은 압도적으로 열세인 군사력, 물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부하들의 이탈과 명령 불복종, 전쟁을 지원해야 할 행정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짓밝혀야 하는 자신의 정치적 불운과 같은 시련과 역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지도자된 자질은 이 절망적인 역경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었다. 전 생애를 통해서 그의 리더십에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대목은 이 전환의 국면 속에서 작동되었다.”     


그는 정치적 불운과 박해를 백의종군의 방식으로 전환시켰으며, 군사력의 열세에서 우세로, 수세에서 공세로, 죽음에서 삶으로 끊임없이 전환해 나아갔고, 그 전환의 목표를 향해 수군 부대를 몰고 나갔다. 이 전환의 힘이 전투에서 발현되었을 때 그는 한산도 싸움에서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고, 이 전환의 힘이 그의 실존적 인격 안에서 작동될 때 그는 백의종군의 역경을 건너가면서 명량 싸움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장군이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장군의 생애와 업적이 지금처럼 찬란하게 빛났을까.     


그는 부하들에게 당당히 죽음을 요구하면서 삶의 길은 그 죽음에 대한 인식 속에 있다는 역설을 각인시키고 여기서부터 전투의 동력을 이끌어낸다. 그가 치러낸 수많은 해전의 승리는 이 전환의 리더십이 가져온 승리였고 명량 싸움은 그 절정이다.”     


그의 복합적인 리더십의 중층 구조 속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죽음에서 삶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헐벗은 부대를 이끌어나가고, 또 실제로 이 같은 원칙으로 전투를 수행해낸 능력에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그가 끝끝내 탈정치적이었고,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 아무런 대가로 바라지 않았던 보상 없는 생애의 모습과 연관이 있다 할 것이다.”     


작가는 이순신 장군의 군사주의가 탈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순결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순신의 생애와 리더십의 특징은 이 탈정치성에 있다고 하죠.     


그는 봉건 정신이라기보다는 실존적 내면의 힘으로 전쟁을 수행했으며, 그의 리더십의 본질도 그 연장 위에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거듭 읽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김훈의 글을 읽고 났더니 더 목이 마릅니다.


박래겸의 《북막일기》를 찾아 읽기로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옛것과 새것을 아우르는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