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Dec 20. 2019

난생 처음 끝까지 읽어본 천자문

김근 《천자문은 힘이 세다》(삼인, 2019)

천자문을 읽었습니다. 말 그대로 읽은 겁니다. 한자 공부 제대로 해보려고 작심한 건 전혀 아니었답니다. 우연히 중문학자인 김근 전 서강대 교수의 책이 제 손에 들어왔죠. 머리말부터 색인까지 1000쪽에 이르는 거질(巨帙)입니다. 감히 읽겠다고 덤벼들기가 쉽지 않았죠. 그런데 자꾸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말로만 천자문, 천자문 할 게 아니라 제대로 한 번 읽어나 보자고.



이 책은 천자문을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한 겁니다. 천자문의 편제대로 네 글자씩 뜯어서 각 글자의 어원을 풀이한 뒤 그 구절이 갖는 의미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해 놓았습니다. 저자는 중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까지도 주체적으로 비판하며 나름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조상들이 남긴 옛 글은 물론 《성경》을 인용하는 데도 전혀 주저함이 없습니다. 예컨대 이런 구절입니다.


박지원의 《연암집》에는 동네 아이가 《천자문》 읽기를 게을리하여 야단을 치자 아이가 “하늘을 보니 푸르기만 한데 ‘천天’ 자는 푸르지 않다고 하니 시시하기만 한걸요”라고 대답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도 줄곧 이에 대하여 회의를 품어왔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천자문》의 어느 주해에도 이 점에 관한 명쾌한 설명이 없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추측을 낳게 한다. 중국의 원본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곧 권력의 기반을 흔들어놓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하늘 천(天)이 검을 현(玄)이라고 가르치면 그런 줄만 알뿐 의심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을 지적해놓은 구절입니다. 천자문을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 텍스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고 저자는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를 종횡무진 넘나듭니다. 그런데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으니 글자 수만 1천 자에 뜻풀이와 해석까지 더해져 엄청난 두께의 책이 되고 말았죠.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독서는 그저 통독(通讀)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정독(精讀)이나 숙독(熟讀)과는 거리가 멀죠. 옛날 어린이들이 천자문으로 한자를 배웠다는 게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실 천자문은 어렵습니다. 모르는 한자도 버겁지만 여덟 자를 한 구로 해서 두 구씩 의미 단위를 만든 뒤 운(韻)까지 맞춘 운문 형식이라 생략된 의미를 하나하나 새겨서 이해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은 것만도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죠.


어쨌든 그렇게 한 번 읽고 나니 천자문의 정체를 조금은 제대로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천자문은 흔히 한자 학습 교재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글씨 교본으로도 널리 사용됐습니다. 심지어 천자문은 그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우주와 삼라만상, 인간 세상의 온갖 법칙과 도덕, 역사와 문화예술 등등 하나의 세계를 압축시켜놓은 지식과 지혜의 보고(寶庫)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써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 책을 통해 ‘천자문’이라는 글자가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천자문이 한반도에 전래된 건 삼국시대로 추정됩니다.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가 일본에 여러 가지 책을 전했다는 기록을 필두로 관련 내용이 일본 역사서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록으로는 《고려사》가 처음이죠. 그래서 어떤 내용인지 찾아봤습니다. 《고려사》 권125의 열전 권38 간신(姦臣) 편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왕이 천자문을 배우는데 안진(安震)이 말하기를, “음과 뜻을 상세하게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니, 전숙몽이 이르기를, “전하께서는 글자의 음만 익히고 뜻을 알려고 하지 않으시니, 전하께서 비록 글자를 알지 못하나 신에게 어떤 손해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불가한 것이므로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사부가 요즘 글자의 뜻을 가르치지 않으니, 때문에 배우지 못하였을 뿐이다.”라고 하니, 전숙몽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전하께서 공부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를 나무라시는데, 신이 가르쳐 드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네 탓이라며 다투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여기서 왕은 고려 충목왕(1344~1348 재위)입니다. 왕실에서 임금에게 천자문을 가르쳤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죠. 음과 뜻을 상세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어요? 그만큼 천자문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 아닐까요? 학식 높은 스승에게 글자의 뜻부터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게 천자문이었던 겁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자문으로 꼽히는 석봉천자문


요즘 한창 김탁환의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읽고 있던 참인데요. 이 소설에도 당대 최고의 명필로 중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석봉 한호의 일화가 꽤 많이 등장해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어디에 얽매이는 게 몹시도 싫어서 한량처럼 매양 속편하게 지내다 어느 날 조정에서 글씨 쓰라고 부르면 한껏 투덜대는 모습에서 그 성품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더군요. 아무튼 석봉이 왕명을 받아 직접 쓴 천자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자문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천자문은 하늘(天) 땅(地)으로 시작해서 별 뜻 없는 어조사 네 글자(焉哉乎也)로 끝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순신의 첫 번째 전투 '녹둔도 혈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