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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18. 2019

이순신의 첫 번째 전투 '녹둔도 혈전'

김탁환 소설과 이순신 역사화, 그리고 녹둔도 발굴 조사

정해년(1587) 가을.

네놈은 송장이 분명하렷다?’

퀭한 눈과 움푹 팬 볼, 찌부러진 귓불에서부터 희끗희끗한 턱수염까지 엉겨 붙은 피딱지를 보니 흑, 가슴이 답답해진다. 땀에 전 소매로 팔각 놋 거울을 닦으며 한 식경이 넘도록 들여다보아도 저 안에 갇힌 것은 들숨 날숨이 붙은 인간이 아니라 차디찬 송장이다. 삭풍을 맞으며 장대 끝에 높이높이 내걸렸던 머리가 제대로 임자를 찾긴 찾았는가.


소설가의 첫 문장은 늘 궁금합니다.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인 김탁환의 소설을 들춰봤죠. 이순신의 생애를 역사소설로 쓴다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까. 김탁환의 선택은 녹둔도 혈전이었습니다. 서른둘이라는 꽤 늦은 나이에 과거 급제. 게다가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성품과 업무 태도가 상관들의 미움을 사 출세 또한 한없이 더디기만 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지 꼭 10년이 되던 1586년, 마흔둘의 이순신은 오랑캐와 머리를 맞댄 국토의 최전방 녹둔도에 부임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녹둔도에 여진족이 침입해 옵니다. 목책을 지키는 병사들이 들에 나가 있는 틈을 타 여진족이 공격을 감행한 거죠. 당시 조산만호(造山萬戶)였던 이순신은 목책 안으로 들어오려는 여진족을 활로 쏘아 죽이고 달아나는 여진족을 추격해 붙잡혀간 백성들을 구해냅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승전으로 기록되지 못합니다. 이순신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을 명받게 되죠. 이순신의 첫 백의종군이었습니다. 당시 녹둔도를 포함한 함경도 지방의 사령관이었던 북병사 이일의 탄핵 때문이었죠. 임진왜란 전 이순신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했던 첫 번째 시련. 소설은 이 일화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려대 박물관 소장 《북관유적도첩》에 수록된 <수책거적(守柵拒敵)>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혹시 이순신 장군의 일화를 묘사한 조선시대 그림이 없을까? 놀랍게도 그런 그림이 딱 한 점 있더군요.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북관유적도첩 北關遺蹟圖帖》이란 화첩이 있습니다. 고려 예종 때부터 조선 선조 때까지 북관, 즉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서 용맹과 기개를 떨친 장수들의 업적을 그린 역사화 여덟 폭을 묶은 책이죠.


이 가운데 수책거적(守柵拒敵)이란 이름의 일곱 번째 그림에 이순신의 무훈이 그려져 있습니다. 목책을 지키고 적을 물리쳤다는 뜻입니다. 패배한 전투로 결론이 났다면 이런 그림을 그려서 기념했을 리가 없겠죠. 녹둔도 전투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어땠는지 확인시켜 주는 그림인 셈입니다. 이 그림은 이순신에 관해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조선시대 역사기록화입니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녹둔도(왼쪽)와 현재 녹둔도로 추정되는 지점(오른쪽)


얼마 전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울시가 민간단체인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북한, 러시아와 공동으로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나선-녹둔도 유적 발굴 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우리의 문화재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북한의 민족유산보호지도국과 러시아 극동연방대학, 러시아군사역사협회가 손잡고 내년 3월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북한 나선시에는 이순신 장군의 공적비 ‘승전대비’와 이순신 사령부가 있던 조산진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옛 지도를 보면 녹둔도는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영토에 편입된 육지가 됐죠. 발굴 조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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