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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01. 2022

‘신화’라는 껍질을 벗겨내면…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 2021)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2022년에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사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오래된 책을 읽었습니다. 마빈 해리스는 1975년에 이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활양식이라고 주장했던 관습에 실제로는 분명하고 쉽게 이해할 만한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수년 동안 연구하면서 알게 되었다. 생활양식의 배경에 감춰진 원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간과되었던 주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 대답은 신밖에 모른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수수께끼로 쉽게 치부해온 현상들을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이 출간된 지 50년 가까이 된 지금도 당연히 유효합니다.     


제가 특별히 주의 깊게 읽은 대목은 제6장 ‘유령화물’부터 제10장 ‘마녀광란’까지 책의 후반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이 되기 전까지는 문명의 손길이 좀처럼 미치지 않았던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의 주민들은 프럼(John Frum)이란 미국 병사가 미국의 왕일 거라 믿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진기한 화물을 잔뜩 싣고 오지 중의 오지였던 섬에 등장한 미국인 병사 프럼. 그는 원주민들에게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을 기꺼이 나눠줬고, 섬을 떠나면서 다시 화물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죠. 원주민들은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립니다. 책에 소개된 일화를 보면, 1970년에 한 원주민 추장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사람들은 거의 2,000년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프럼을 그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에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고립된 일본군 병사들은 더는 원주민들의 거룩한 조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 원주민들의 것을 하나하나 빼앗았고,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먹어 치운 뒤엔 원주민들을 식량으로 삼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은 헛된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인 저는 특히 마녀사냥일 설명한 대목에 주목했습니다.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전개하는 마빈 해리스 특유의 서술 방식도 눈에 띕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에필로그에서 만날 수 있죠. 저는 이 대목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의식을 비신화화하려 애씀으로써 평화와 정치, 경제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강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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