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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r 06. 2022

우열은 없다. 다른 세계, 다른 미술이 존재할 뿐

강희정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2>(사회평론, 2022)

인도 편에 이어 둘째 권은 중국 미술입니다. 황하 문명의 기원부터 한나라까지를 다룹니다. 한국 미술이 중국 미술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 미술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일찍이 저명한 중국 미술사학자 마이클 설리번의 <중국미술사(The Art of China)>(예경, 1999)을 읽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를 포괄하는 통사죠. 그런데 딱히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보통의 교양인에게는 상당히 딱딱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서양인 학자가 쓴 중국 미술사이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상당합니다. 우선, 통사이되 교과서적인 서술을 지양하고 중국 역사에서 미(美)의 가치가 정립되고 변모해가는 과정을 쉽고도 설득력 있게 풀어줍니다. 우리는 굳이 중국 미술을 시대별 대표 유물을 중심으로 달달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어렵고 재미도 없죠. 또 하나, 우리 미술과의 상관성을 제대로 살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중국 미술사를 알아야 할 필요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수천 년 전에 이미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대단한 문화를 발전시킨 중국이라는 나라의 유구한 미술 전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 유물은 기원전 9세기 유물로 알려진 <모공정>이란 청동기입니다. 취옥백채, 육형석과 함께 대만국립고궁박물원의 3대 보물로 손꼽는 유물이라 합니다.     

 


무려 기원전 9세기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지만, 이 세 발 솥 안에 새겨진 글자가 497자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청동기 가운데 가장 긴 명문이 담긴 유물로 알려졌습니다. ‘구정의 전설’로 널리 알려진 희귀한 전통의 산물인 정(鼎)을 주목해보아야 할 이유를 우리는 덕수궁과 경복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두 궁궐의 정전인 중화전과 근정전 앞에 양쪽으로 커다란 정(鼎)이 놓여 있기 때문이죠. 그 용도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유심히 본 것은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그림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조성된 중국 호남성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그림 두 점인데요. 비단에 그린 두 작품은 각각 <용봉사녀도>와 <남자어룡도>란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아무리 무덤 안에 있었던 것이라 해도 기원전 3세기에, 그것도 비단에 그린 그림이 이렇게나 온전하게 남아 전한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줍니다.     


중국 청동기의 화려함에 비하면 빈약하고 초라하게만 보이는 우리 청동기 유물에 관해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애초에 미술은 어느 쪽이 우월하고 열등한지 가를 수 없습니다. 그저 다른 세계, 다른 미술이 존재할 뿐이지요.” 미술은 그런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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