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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n 25. 2022

예루살렘의 멸망을 초래한 유대인의 흑역사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1, 2>(나남, 2008)


공교롭게도 6‧25 전쟁 72주년이 되는 날 책장을 덮었습니다. 마틴 해리스의 명저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가지 쳐 읽었습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인입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66~70년) 당시 유대 저항군 지휘관으로 참전했다가 훗날 로마 황제가 된 베시파시아누스에게 붙잡혔고, 이후 로마 이름으로 바꾸고 로마인으로 살면서 기독교와 유대교 역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깁니다.      


<유대전쟁사>는 에피파네스라 불리는 안티오쿠스라는 인물이 무력으로 예루살렘에 진입한 기원전 16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된 서기 70년 무렵까지를 다룬 전쟁의 기록입니다. 신약성서로는 성이 차지 않는 그 시대의 역사를 유대인으로 태어나 로마인으로 죽은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한 비범한 지성의 눈으로 목격하고 정리한 귀중한 기록이죠.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의 원인이 유대인들의 오만과 자만, 반목과 대립, 내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뼈아프게 기록합니다. 예루살렘의 고난은 로마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는 다음과 같은 진술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예루살렘의 유대인)은 함락 이전에 아주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고, 로마 점령군은 오히려 예루살렘을 구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내전이 도시를 멸망시켰고, 로마군은 도리어 성벽보다 더 강한 내전을 종식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재난의 책임은 주민들에게 있고, 로마군의 행동은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처음 불태운 것도 유대인들이었다고 저자는 증언합니다. 로마군의 포위 공격으로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사람으로서 차마 해선 안 될 경악스러운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살인, 약탈, 방화의 증거들이 이 책에는 차고 넘칩니다. 그 참극의 극단에 인육을 먹은 마리아라는 여인의 사례가 소개돼 있죠.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던 마사다라는 요새를 지키며 저항하던 유대인들의 집단 자살극은 차마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요세푸스는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해 모두 960명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은 물론 중간중간에도 요세푸스는 자기가 이 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록했는지 밝힌 대목들이 나옵니다. 물론 훗날 로마인이 되어 로마 황실의 보살핌 속에서 기록한 역사라는 측면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유대인이든 로마인이든 찬사와 비판에서 모두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 비범한 기록이 무려 2천 년 전에 쓰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놀라움을 줍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습니다.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이 책을 읽게 될 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하지만 이 기록 전체를 통해서 나는 오직 진리만을 염두에 두었노라고 자신 있게 확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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