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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l 07. 2022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줄리언 반스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다산책방, 2019)


스스로 창작하는 예술가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관찰자가 됩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기본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관찰자가 없는 창작의 존재는 무의미하죠. 그래서 우리는 때로 뛰어난 창작자 못지않은, 그 창작자의 뛰어난 면모를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관찰자들을 주목하게 됩니다. 전시 기획자와 미술평론가와 미술사학자들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더 넓게는 작가와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     


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일급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미술 에세이 17편을 모은 책입니다. 화가와 작품을 보는 안목도 대단할 뿐 아니라, 일급 작가답게 글솜씨도 일품입니다. 근래 이렇게 격조 있는 미술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었죠. 미술 전공자의 미술 담론에서는 볼 수 없는 창의적인 발상과 접근은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제리코 : 재난을 미술로’에서 단연 빛을 발합니다. 저는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에서 이토록 풍부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줄 아는 작가의 내공에 탄복했습니다.     


여러 화가의 그림에 얽힌 사연을 읽다 보면 작가가 미술을 제대로 공부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는 화가에 관한 몰랐던 사실과 모르는 화가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날카롭고 빛나는 통찰 속에서 하나하나 베일을 벗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인상파 시대 파리의 미술상 볼라르의 책을 갖고만 있으면서 아직 읽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작가가 가장 훌륭한 마그리트 해설사로 평가한 데이비드 실베스터의 <마그리트>는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으며, 뜻밖에도 실베스터가 프랜시스 베이컨에 관해 쓴 책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를 순전히 제 개인적인 호기심에 사서 읽었고,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담에 기초한 마틴 게이퍼드의 책을 여러 권 섭렵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책에 수록된 글 ‘이것은 예술인가?’에서 공감한 대목을 옮깁니다.     


“예술이 실력 없는 작가나 사기꾼, 기회주의자, 명성을 좇는 이들을 배제하는 신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외려 난민 수용소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작한 플라스틱 통을 손에 쥔 채 물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곳 말이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물건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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