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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11. 2022

다빈치, 라파엘로 그리고 매너리즘의 탄생

조르조 바사리 <르네상스 미술가평전 3>(한길사, 2018)

바사리의 미술가평전 제3권은 저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시작합니다. 사실 제3권은 다빈치와 라파엘로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론 이들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중요한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매너리즘 회화의 선구자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매너리즘을 굳이 우리말로 설명하자면 ‘태도주의’입니다. 즉 화가가 자기의 주관적 태도를 그림에 반영한다는 뜻이죠. 르네상스 미술은 대상의 충실한 재현을 지상 목표로 한 것이었고, 여기에서 벗어난 양식으로서 매너리즘이 태동했다는 것은 미술이 모방의 시대를 벗어나 표현의 시대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예술가의 개성이 본격적으로 발휘된다는 뜻입니다.     


예술가는 예나 지금이나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바사리는 이 책의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드물게 보는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비참한 궁핍 속에서 제대로 명성을 얻지 못한 채 예술의 고귀한 열매를 열리게 한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만일 이들이 우리 시대에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면 옛사람들이 이룩한 것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이 예술의 명예를 위하여 싸우는 것 이상으로 굶주림과 싸움에 직면하는 사실을 알고도 방관하는 것은 천재를 사멸시키는 행위다. 이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예술가들을 도와야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분명하며, 동시에 우리가 수치스럽게 느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으니 <미술가평전>이라는 위대한 저작을 남길 수 있었겠죠. 바사리는 생전에 저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보았고, <모나리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사리의 평가에 따르면, 다빈치는 신(神)의 경지에 이른 화가였습니다. 운 좋게도 루브르에서 저는 이 그림을 두 번 봤습니다. 바사리가 <모나리자>를 보고 어떤 평을 남겼는지 다시 읽어봅니다.     



“예술이 자연을 어느 정도까지 모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초상화를 보면 곧 이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그림에서 그가 정묘한 필치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세부를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중략) 레오나르도의 이 그림에는 미소와 아늑한 분위기가 감돌며, 인간적이라기보다는 신적인 것을 느끼게 한다. 살아 있는 것 같은 경탄할 만한 그림이다.”     


다빈치와 라파엘로의 압도적 무게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 가운데서 기억해야 할 작품들을 도판으로 소개합니다.     


조르조네 다 카스텔프랑코 <폭풍우>, 1502-1503, 패널에 오일, 82×73cm,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안토니오 다 코레조 <성모승천>, 1526-30, 프레스코, 1093×1195cm, 프라마 대성당, 파르마


“아름다운 의상과 인물들의 자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화가의 손으로 표현했다기보다는 신의 영감과 상상력의 결정체라고 생각된다.”     



피에로 디 코시모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화>, 1480, 57×42cm, 콩데미술관, 샹티

 


프라 바르톨로메오 디 산 마르코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초상>, 1517, 패널에 오일, 47×31cm,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마리오토 알베르티넬리 <방문>, 패널에 오일, 232×146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라파엘로 다 우르비노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상화>, 1512, 패널에 오일, 108×80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그는 교황 율리우스의 초상을 유채화로 그려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게 되었는데, 이 초상화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으므로 사람들은 교황의 실물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바사리는 미술가평전에서 가장 긴 분량을 할애하고 곳곳에서 찬사를 바친 라파엘로에 관한 평전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내가 라파엘로 생애의 끝 대목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유명한 화가의 근면과 노력과 연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그가 재치와 천재성의 도움으로 과오를 어떻게 잘 피했는지를 알게 함으로써 다른 화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누구나 자기가 타고난 자질에 만족하고 열심히 노력해야지, 자기에게 천부의 재주가 없는데도 불필요한 일에 집착하여 남을 이기려고 공연히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로렌제토와 보카치노에 관한 장의 마지막을 장식한 다음과 같은 대목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실제 실력보다 과대평가되었을 때 그 사람의 작품이 진정한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말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작업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빨리 찬사를 보내는 일이다. 섣부른 찬사는 이 미숙한 사람을 지나치게 부풀게 만들어, 장차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비난보다는 칭찬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칭찬은 아첨에서 오는 때가 있지만 비난은 진실을 어느 정도는 드러내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바르톨로메오 다 바냐카발로에 관한 장에 첫 머리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술에서 경쟁의식은 극히 바람직한 것이지만, 만약 경쟁으로 자존심과 허영이 자극된다면 자신의 우쭐한 생각과 의견 때문에 갈망하는 명성이라는 것은 연기와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즉, 자신의 결점과 남의 작품의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없다. 훌륭한 화가의 작품을 존경하고 충실하게 모방하는 겸손한 사람들에게 성공의 길이 가까울 것이며, (후략)”

안드레아 델 사르토 <페트라르카의 책을 들고 있는 여인>, 1514, 패널에 오일, 87×69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일 롯소(롯소 피오렌티노) <그리스도 십자가 강하>, 1521, 패널에 오일, 375×196cm, 시립 미술관, 볼테라

     

프란체스코 마추올리(파르미자니노), <볼록거울에 비친 자화상>, 1524, 패널에 오일, 미술사 박물관, 비엔나



<목이 긴 성모마리아>, 1534-40, 패널에 오일, 216×132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제3권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볼로냐의 조각가 프로페르치아 데 롯시 부인이 여성 예술가로는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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