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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Oct 01. 2023

우리는 미지의 존재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민음사, 2022)


SF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명작 <솔라리스>의 폴란드어 원작을 우리말로 직접 옮겼다. 번역이 매우 훌륭하다.


<솔라리스>의 문학적 위상에 관해선 굳이 긴 말이 필요치 않으리라. ‘미지와의 만남’을 다룬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건 1992년. 당시 18살, 고2였던 나는 그해 청담사에서 출간한 초판을 사서 읽고 지금까지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 책의 어디에도 읽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틀림없이 어떤 이유로 책을 사서 곧바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담사 판은 민음사 판의 옮긴이가 밝힌 대로 프랑스어판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데다, 내용을 여러 군데 축약해서 작가조차 생전에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꼭 30년이 지나 제대로 된 번역본을 다시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새롭다.


청담사 판에는 러시아어판 작가 서문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한 1961년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미국 SF가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을 공존, 지배, 패배의 세 가지 유형으로 다룬다고 전제한 뒤, 이 작품을 쓴 의도를 구체적으로 밝혀놓았다. 민음사 판에는 서문이 없으므로 좀 길더라도 핵심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지구의 문명과 지구 이외의 행성의 그것과의 차는 대개 양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명이 우리 지구의 문명과 전혀 다른 길을 통해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쨌든 나는 이 문제를 좀더 넓은 시야에서 해명해보고자 했다. 그것은 어떤 특수한 문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미지의 것’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미지의 것’을 인간의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생물학적인 것 혹은 심리학적인 것을 상기시킬 정도의 조직과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예상, 가정 혹은 기대를 완전히 넘어서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이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은 인간에게 일련의 인식적, 철학적, 심리적 그리고 윤리적 성격의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우주에는 우리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모든 것을 예견하고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해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외계의 ‘과자’의 맛은 그것을 먹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중략)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문을 쓰려고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는 완전히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 그 이야기를 통해 ‘우주에는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 뿐이라는 것만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깊고 융숭하다. 이야기의 골자는 솔라리스라는 행성의 꿈틀거리는 바다와 ‘접촉’하려는 인간이 겪는 일들. 소설은 SF 서스펜스로 시작해 광대한 철학과 인식론의 세계로 도도하게 나아간다. 더 많은 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다만 이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주는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솔라리스의 바다와 소통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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