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Dec 28. 2023

할아버지 영조가 손자 정조에게 만들어준 보물

[석기자미술관]⑨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딛고 왕위에 오른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 아버지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왕세손이었던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에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승정원일기>의 기사를 지워달라고 요청한다. 당시 영조가 83세, 정조는 25세였다.     


효손 은인 (1776년)


아들의 죽음이야 돌이킬 수 없었지만, 장차 왕위를 이을 손자가 아버지에게 불리한 기록을 지워달라고 호소한 그 마음에 감동한 할아버지 영조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만들게 해 손자 정조에게 준다. 보물로 지정된 <정조 효손 은인>이다. 실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임금이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고 왕세손이 시좌(侍坐)하여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친히 효손(孝孫) 두 자를 써서 보(寶)를 주조(鑄造)하여 세손에게 주어 그 효성을 나타내려 한다." 하매,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참으로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호판(戶判)을 시켜 주조를 끝낸 뒤에 가지고 들어오게 하라. 내가 누워서 친히 주려 한다. 이렇게 하고 나면 우리 손자의 지극한 효도를 어찌 팔방에 보일 뿐이겠는가? 만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영조실록》 52년(1776) 2월 7일 기유 첫 번째 기사)     


효손 은인 인록 (1776년)


바닥 면에 효손 팔십삼서(孝孫 八十三書)가 새겨졌고, 나무 보관함 겉면에 어필 은인(御筆 銀印)이라 새겨 붙였다. 현재 남아 전하는 조선 왕조 어보 가운데 임금의 글씨를 새긴 유일한 보물이다. 얼마 전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펴낸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제6권에서 관련 내용을 읽고 감동한 바, 공교롭게도 그 실물을 직접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책으로 읽고 실물로 확인하는 공부다. 유홍준 교수는 책에 “이 은인은 왕조의 종통을 지키려는 영조의 간절한 소망과 이를 끝까지 받든 정조의 효성을 말해주는 기념비적인 왕실공예품이다.”라고 썼다.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영조와 정조가 ‘탕평한 세상’을 이루고자 글과 그림을 활용해 소통하려는 모습에 주목한 전시다. 영조와 정조의 글씨를 비롯해 두 임금의 의도를 담아 제작한 궁중행사도 등 18세기 궁중 서화의 품격과 장중함을 보여주는 유물 88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김두량 <삽살개>(1743년)


앞서 <정조 효손 은인과 함>을 먼저 언급했지만,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남리 김두량의 그림 <삽살개>다. 그동안 미술책에서만 수없이 봐온 이 그림은 개인 소장품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털 하나하나까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이 특별한 작품을 더 특별하게 하는 건 그림 위에 적힌 영조 임금의 시(詩)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너의 일이거늘

어찌하여 길에서 낮에 이같이 짖고 있는 게냐.

柴門夜直 是爾之任 如何途上 晝亦若此     


영조가 탕평을 따르지 않는 신하를 낮에 길가를 돌아다니는 삽살개에 비유하는 구절을 더해 탕평을 따르라는 뜻을 담아낸 그림이다. 영조의 시 뒤에 붙은 글씨는 “계해년(1743)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이 그리다.”이다.     


영조가 정조와 더불어 흔히 ‘문예군주’로 불리는 까닭은 글과 그림 솜씨 때문이다.     


     

바위 그림, 《영묘어필첩 英廟御筆帖》제29-30면


이 바위 그림은 영조가 재위 40년째인 1764년에 직접 그린 것으로, 영조가 세상을 떠난 뒤 왕위에 오른 손자 정조가 할아버지의 글과 함께 묶어 펴낸 《영묘어필첩 英廟御筆帖》의 제29번째와 30번째 면에 실렸다. 오른쪽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쳐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고, 왼쪽은 백성이 미미해 보이더라도 항상 두려워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300년 전에 왕위에 오른 봉건왕조의 군주조차도 이렇듯 지극한 마음으로 백성을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300년이나 지난 지금 말할 수 없이 남루한 이 나라의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전시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 할 사람들은 이 나라를 통치하는 바로 그들이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이 전시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시대적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사도세자 묘지 (1762년)


임금도 인간이었으니 자기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아버지 영조는 자신이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아들 사도세자의 무덤에 넣을 묘지(墓誌)에서조차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이 자기 아들이라 할지라도.     


소인의 무리와 허물없이 놀아나니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도다풍요로운 데서 태어나고도 마음을 잡지 못해 미치광이가 되었도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1798년)


그런가 하면 정조는 자신이 믿고 아끼는 신하였던 심환지 흉을 보는 글을 누군가 올리자, 심환지에게 그 신하를 욕하는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할아버지 영조 때부터 임금을 섬긴 심환지는 정조보다 스물두 살 위였다.     


이 신하는 내면이 충실하지 못하니 참으로 호로자식이다.”     


김중만 분무공신 반신상 (1750년)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초상화다. 보물로 지정된 경기도박물관 소장의 <김중만 분무공신 반신상>(1750), 역시 보물로 암행어사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박문수 분무공신 반신상>(1750)과 <박문수 분무공신 전신상>(1728), 김홍도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표암 강공 칠십일세 진영>, <허목 초상>, 그리고 중국 화가 호병이 그린 실학박물관 소장 <김육 소상>을 볼 수 있다.     


박문수 분무공신 전신상(1728년)과 반신상(1750년)
강세황 초상(그림 이명기 1783년/글 정조 1793년/글씨 조윤형 1793~9년)

전시정보

제목영조 즉위 300주년 기념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기간: 2024년 3월 10()까지

장소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전시품: <삽살개>, <화성원행도>,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보물등 54건 88

작가의 이전글 김대건 신부 조각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