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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29. 2023

박물관 유람기② 돌 문화유산의 보고 ‘우리옛돌박물관’


서울시 종로구 성북동 언덕에 가면 아주 특별한 박물관이 있다. 전시공간으로 쓰이는 박물관 건물 4층에서 옥상으로 나가면 성북동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터를 잡은 이유를 알겠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게 펼쳐진 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릿값을 하고도 남는다. 지금은 고급 주택이 빼곡한 이곳에는 각국 대사관저가 모여 있어 오가는 길에 ‘대사관로’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옛돌박물관의 자랑거리인 ‘돌의 정원’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빙 에둘러 조성된 길 이쪽저쪽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돌 유물이 가득하다. 옥상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가장 앞자리에는 ‘기우제단’이 늠름하게 서 있다. 비가 오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하늘에 비는 장소에 세워졌을 신성한 돌기둥은 꼭 기우제를 주관하는 제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기면 계단 위로 더 높은 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얼굴이 보인다. 후덕하고 수더분한 모습을 한 민불(民佛)이다. 커다란 바위를 생긴 대로 깎아 만든 백성의 부처. 저 앞에서 옛사람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저 부처는 그들에게 무엇을 이뤄줬을까. 수많은 사람이 나타나고 사라진 기나긴 세월 동안 돌부처는 건재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으리라.     



옛사람들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사람의 얼굴을 한 조각상을 세웠다.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나 잡귀들을 물리치는 신통력을 가진 이 존재의 이름은 벅수(法首). 악귀나 잡귀를 쫓자면 무시무시하고 근엄한 모습이어야 할 텐데, 하나같이 앙증맞고 익살스러운 표정이다. 거기에 백성의 마음이 담겼다. 소박하고 다정한 생활인의 모습. 그래서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제주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돌은 다른 지역과 다른 특별함이 있어 ‘제주도 푸른밤’이라는 별도의 공간으로 꾸몄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대문 양식인 정낭(木門)은 나무 개수에 따라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굵직한 나무 3개를 가로로 모두 걸쳐놓으면 “좀 멀리 갔어요”, 2개가 걸쳐진 것은 “저녁때쯤 와요”, 1개만 있으면 “금방 돌아와요”, 하나도 없으면 사람이 있다는 뜻이란다. 어찌 이런 풍습이 생겨났는지 신기하다. 언젠가 제주 민가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는데, 그 집 입구에도 바로 저 정낭이 있었다.     


지체 높은 이들의 무덤 앞을 장식했던 문인석과 무인석의 호위를 받으며 언덕을 오르면 길옆으로 놓인 갖가지 돌을 만날 수 있다. 석탑, 석비, 석등, 석인, 석수….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덩어리는 옛사람들의 훌륭한 조각 재료였으리라.     



박물관에서 수집한 석조 유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조선 후기 미륵불이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미래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바로 그 부처. 고단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올 세상은 조금은 더 나으리란 기대와 희망을 담은 부처. 돌의 정원 곳곳에서 이런 석불을 만날 수 있다. 그 표정에 깃든 선한 미소. 염화미소(拈花微笑)를 머금은 부처의 얼굴는 한없는 자애로움의 표상이다.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왼쪽으로 아주 특별한 돌 유물들이 모여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것들이다. 일본인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간 장군석과 장명등은 오랜 기간 일본 정원의 장식물로 사용됐다.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석조 유물이 타향살이 하고 있을 터.    

  

대도시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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