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⑬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한국화 전문 화랑을 표방한 동산방화랑은 1961년 표구사로 시작해 1974년 화랑으로 거듭난 이후 인사동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주역이다. 설립자 동산 박주환(1929-2020)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 가운데 209점을 그 아들 박우홍 대표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한국화 154점, 기타 회화 44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동산 박주환 컬렉션’ 가운데 9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일찍이 지난해 전시를 관람하고 짧은 소회를 남겼지만, 기증의 중요성을 담아 뉴스를 만들어보려던 계획은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수포가 되고 말았다. 새해에 다시 전시장을 찾은 이유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화가들이 동산방화랑을 거쳐 갔다. 1부에서는 서화연구회를 설립해 그림 교육을 실천한 김규진과 독립운동가이자 화가였던 김진우의 묵죽화를 통해 서화(書畫)의 대중화를 표방했던 당시 화단의 흐름을 살핀다. 대나무 그림으로 워낙 유명해 해강죽이라 불렸던 김규진의 <풍죽>, 여덟 폭 병풍으로 꾸며진 금강산인 김진우의 <묵죽>, 의재 허백련의 <월매>, 그리고 이당 김은호의 여덟 폭 병풍 그림 <매화>를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해방 이후 전쟁을 거치는 격동의 시기에 전통 화단의 계보를 이으며 한국화의 정체성을 찾고자 분투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서예가이자 수장가로 유명했던 소전 손재형의 <석죽>, 운보 김기창의 <죽림칠현>, <매>, 채색화의 맥을 이은 정은영의 <훈풍>, <모란과 나비>, <하일>, 유지원의 <귀가>, 김흥종의 <꽃소식․안스륨> 등을 만날 수 있다.
3부는 국내 미술대학 ‘동양화가’를 나와 서양화와 구별되는 현대 한국화의 길을 모색한 화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층 원형전시실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는 섬유예술가 이신자의 남편이기도 한 장운상의 <한일>, 남천 송수남의 <산수>, <자연과 도시>, 이철주의 <세종로 풍경>, 일랑 이종상의 <남해즉흥> 등이 걸렸다.
4부에는 전통 수묵화의 근간이 되는 지필묵에서 벗어나 형식과 내용에서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보여준 화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김호득의 <산길>, 석철주의 <생활일기(신 몽유도원도)>, 강경구의 <북한산>, 박석호의 <흐린 날>, <산촌>, 류민자의 <상(像) 1>, 임효의 <무위자연-반야심>, 김근중의 <꽃세상 8-14> 등을 볼 수 있다.
에필로그에선 당대 제일의 서예가 일중 김충현의 글씨 <벽계>, 운보 김기창의 <화조>, 우현 송영방의 <어미닭> 등을 만나게 된다. 전시장 밖 복도에는 김호석의 <박주환 초상>, 김충현의 글씨 <동산(東山)> 등이 걸렸다.
기증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국 이래 다시 없을 기증으로 기록될 이건희 컬렉션의 등장에 묻혀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동산 박주환 컬렉션은 한국 근현대 한국화 연구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란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