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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11. 2024

그 눈을 들여다보면 문득 내가 보인다

[석기자미술관]⑭ 강형구 개인전 <시대의 초상>

 

털 한 올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사실주의적 묘사의 극치.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초상화라 하면 누구나 강형구 작가의 그 강렬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본격적으로 취재해보고 싶은 마음이 내내 컸으나, 이상하게도 인연이 가닿지 않아 지금껏 기회를 못 얻었다. 지난해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현대 미술 거장 6인: 아름다운 선물> 전에서 잠시 뵌 것이 전부. 전적으로 내 게으름과 분별없음 탓이다.     

     


강형구 화백의 작품이 이번에는 미술관, 갤러리가 아니라 고층 건물 로비와 유휴 공간에 걸리거나 놓였다. 전시회를 보러 처음 찾은 건설회관은 낮에도 유동인구가 꽤 많아 보였고,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건물 1, 2층 로비에 걸린 작품을 보게 된다.     


강형구 <자화상 Self-portrait>, 2019, 캔버스에 유채, 530×400cm


정현관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로비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벽 하나를 뒤덮은 강형구 작가의 초대형 자화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로 5m 30cm, 가로 4m에 이르는 대작으로, 전체적으로 붉은 바탕도 그렇고 특유의 형형한 눈빛까지 강형구다운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흔히 강형구 하면 알루미늄 작업을 많이 기억하지만, 이 자화상처럼 캔버스 작업도 꽤 많다.     


강형구 <부활 resurrection>, 2014, 캔버스에 유채, 244×244cm


상반신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의 제목 ‘resurrection’은 부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뜻한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두 팔을 벌린 채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신체를 가진 존재. 힘차게 휘날리는 수염과 환하게 빛나는 별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떠올릴 수도, 고단한 현실을 박차고 일어서는 자신을 마주할 수도 있으리라.    

 

강형구 <호시(虎視)>, 2021, 알루미늄에 유채, 122×244cm

     

강형구 <처칠 Churchill>, 2016, 알루미늄에 유채, 122×244cm

     

강형구 <링컨 Lincoln>, 2016, 캔버스에 유채, 194×260cm

     

강형구 <간디 Ghandi>, 2022, 캔버스에 유채, 260×194cm

     

강형구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눈’이다. 작가는 채색하든 안 하든 정면 초상화에서 눈의 표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림 앞에 서면 꼭 무어라고 말을 걸어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작가가 그린 건 단순히 그 인물의 초상이 아니다. 유명인의 얼굴, 그들의 눈빛이 관람자의 감정을 움직이고 흔드는 것, 그것이 바로 강형구의 작품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특히 흥미로운 건 1층 로비 한쪽의 빈 사무실 공간이다. 입구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눈을 크게 치뜬 특유의 표정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이 그림의 뒷면에도 달리의 얼굴이 있다. 이 공간은 원래 사무실로 쓰이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에 있던 집기를 모두 들어내기만 했을 뿐 전시를 위해 따로 꾸미거나 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그림을 벽에 기대 놓았다.      

     

열린 갤러리 전시라면 이런 자연스러움을 품어야 한다. 그림을 꼭 말끔하고 번듯한 화이트 큐브에 걸라는 법이 있는가. 널찍한 빈 공간을 화가의 작품으로 채워놓으니 그것대로 근사하지 않은가. 벽에 걸든 기대 놓든 관람자가 보기 편하면 그걸로 족하다. 전시장이라 이름 붙은 공간을 고집해온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거라 본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돌아가면 로비를 빙 두르는 이동로를 따라 작품 석 점이 걸려 있다. 여기서는 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의 초상과 더불어 V 모양을 한 손을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다. 관람객에게 보내는 작가의 응원과도 같다.     


강형구 <오드리 Audrey>, 2012, 캔버스에 유채, 260×194cm (2pcs)

     

강형구 <소피아 Sophia>, 2016, 알루미늄에 유채, 150×300cm

     

강형구 , 2013, 캔버스에 유채, 244×122cm

 

강형구 작가는 미대 졸업 후 무관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대기만성형 작가로 불린다. 그림 팔기를 포기한 작가라 해서 ‘팔포 작가’로도 불렸다. 53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작품을 팔았다. 캔버스 천을 둘둘 말아 해외 아트페어에 나가 뜻밖에 높은 가격에 작품이 팔리며 유명해졌다. 지금도 조수(어시스턴트) 없이 혼자 그린다.     



이 전시는 건설공제조합이 지난해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현대 미술 거장 6인: 아름다운 선물> 전을 기획한 아트테인먼트 회사 레이빌리지와 협력해 마련했다.     


전시 정보

제목강형구시대의 초상 

기간: 2024년 4월까지

장소건설회관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 711)

전시품회화 20여 점

문의: 010-5312-2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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