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이스트를 넣은 빵》(마티, 2016)
책 좋아하는 이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쳐 갔을 장정일의 독서일기. 이 책의 엮은이는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도 훨씬 더 장정일의 독서에서 큰 수혜를 받은 모양이다. 엮은이의 글 한 대목을 본다.
장정일의 문학작품에 열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독서일기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책읽기를 배웠다. 나는 장정일의 독서와 사유에 편승했다. 착각이어서 부끄럽지만 내가 읽지도 않았던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독서일기』에 수록된 책을 읽으며 작가의 감상이 내 것이라 믿었다. 미숙했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책을 읽던 시대의 추억이다.
누가 아니겠는가. 엮은이가 이제는 절판된 7권의 독서일기에서 어떤 글들을 가려 뽑았는지를 보면 이 책은 독서일기, 더 나아가 장정일에 대한 헌사라 하지 않을 수 없을 터. 그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독서일기의 엑기스만 모아 놓은 이 책에도 장정일의 독서에 관한 지론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평론집은 물론이고 입문서 종류의 책이나 문학사 종류의 책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책이고 읽더라도 가장 늦게 읽어야 할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게 중요하지 이글턴의 셰익스피어 연구서가 필요한 게 아니며, 브레히트를 읽는 게 먼저지 서사극에 관한 잡다한 책을 끌어 모으는 일이 의미 있지 않다. 입문서나 평론집을 읽느니 텍스트를 한 번 더 읽고 직접 그것을 쓰는 게 낫다. (…) 이 원칙을 지키면 좁은 방을 두 배로 넓힐 수 있다. 방 안에 책이 가득하면 책이 귀한 줄 모르게 된다. 재미있게도 나는 드문드문 비어 있는 책장을 보면서 독서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비어 있어야지 채우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인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원전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해를 맞아 포화상태에 이른 책장에서 더는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큰 책 수십 권을 미련 없이 들어냈다. 그 빈자리는 새로 선택받은 책들이 차지하게 되리라. 독서에 관한 장정일의 지론을 드러낸 또 다른 대목이 그 뒤에 이어진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긴다.
내가 보기에 바른 독서란,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와 같다. 때문에 독자는 저자가 그 책을 쓰기 위해 펜을 내어 달렸던 그 열정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읽어내려가야 한다. 어떤 저자도 아침에 5분, 저녁에 5분 하는 식으로 책을 쓰진 않았으므로 그런 식의 독서는 이인삼각 경기를 파탄 낸다. 똑같은 책을 ‘자투리 독서’로 한 달이 걸려 읽은 독자와 한달음에 읽어치운 독자는, 엄밀히 말해 다른 책을 읽은 것이다. ‘나는 그 책을 밤새도록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생은, 특히나 청춘은 그렇게 응축됨 몇 개의 경험만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들고 3일 이상 뭉그적거리면 그 책은 당신 손에서 죽은 거라고 봐야 한다. ‘피로 쓰인 책은 게으른 독자를 거부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니체의 생각에 나는 동감하고 있다.
장정일의 독서론은 내 평소 생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것이 상식에 좀 더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에 장정일이 TV 방송에서 《공부》에 관한 문답을 위해 작성한 답변 중에서 내 생각과 일치하는 두 가지 답변을 여기에 옮긴다.
5. 공부는 읽기․생각하기․쓰기라는 삼박자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삼박자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게 바로 독후감이지요. 우리 옛말에 공부해서 남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처음에 독후감을 쓸 때는 뭘 쓸지 막막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읽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자기 내부에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6. 저에게 ‘무슨 책이 좋아?’라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나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좋은 책을 찾는 수고가 덜어지고, 효율 높은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언급된 229권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15권이다. 내가 안 읽은 책 가운데 12권을 가지 쳐 읽으려 한다. 내가 읽은 장정일의 책은 10종(20권) 정도다.
2020년의 독서 여행을 시작한다.